분청자 인화문 내섬명 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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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15세기 후반의 분청자 완(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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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15세기 후반의 분청자 완(盌).
내용

지름 18.0㎝. 일본 영락미술관(寧樂美術館) 소장. 구부(口部)가 넓게 벌어지고 동체(胴體)는 둥그렇게 벌어졌으며, 굽다리는 알맞은 완이다.

내면 중앙에 큰 국화꽃을 중심으로 6곳을 방사선형으로 ‘內贍(내섬)’명을 찍어 나타내었고 그 주위로 무수한 선과 연판문대, 그리고 우점문(雨點文)과 무수한 선을 나타내었다.

외면은 무수한 선문(線文)과 국판문(菊瓣文)을 자유롭게 시문했고, 내·외면에 흐리게 백토(白土)를 귀얄기법으로 분장하여 문양과 백토의 효과가 잘 나타나고 있다.

유약은 엷은 회청유(灰靑釉)를 전면에 시유하였으며, 굽다리는 노태되어 있어 갈색을 띄고 있다.그릇에 표시된 '內贍(내섬)'은 내섬시(內贍寺)를 의미하는 명문으로 이 그릇은 내섬시의 그릇이란 의미이다. 내섬시는 각 궁전에 대한 공상(供上), 2품 이상에게 주는 술, 왜인(倭人)과 야인(野人)에게 주는 음식과 직조 등의 일을 맡아보았다.

‘內贍(내섬)’명 분청자는 주로 전라도 지방에서 집중적으로 제작되었다. 이 그릇도 전라도 지방의 가마에서 무늬장식처럼 찍어 나타낸 점이 흥미로운데, 15세기 후반의 작품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일본 네이라쿠미술관 소장 한국문화재』(국립문화재연구소, 2006)
집필자
윤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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