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자유시의 효시로서 1919년 2월 『창조(創造)』 창간호에 발표되었고, 1925년 첫 시집 『아름다운 새벽』에도 수록되었다. 작자는 「불놀이」의 창작동기에 대하여 “서양의 현대시 중 베를레느(Verlaine,P.) · 폴 포레(Foret,P.) · 보들레르(Boudelaire,C.) 등 소위 상징주의 작품이 마음에 들고 충격적이어서 우리말로 그런 종류의 시를 써보고 싶어 처음으로 시험한 것 중 하나가 불놀이가 되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전체 5연 35행으로 이루어진 이 시의 배경은 음력 4월 초파일에 대동강에서 벌어진 불놀이 장면이다. 화자인 젊은이는 이 불놀이를 바라보면서 흥겹게 노는 군중에서 떨어져 앉아 죽은 애인을 그리워하며 애상에 젖는다. 그리고 자신의 슬픔에 공감하지 않는 사물과 사람들 때문에 괴로움을 느낀다.
그런데 이 혼자만의 슬픔과 ‘강렬한 정열에 살고 싶다.’는 소망이 이율배반적인 갈등을 일으키다가 마지막에는 ‘확실한 오늘을 놓치지 말라.’는 명령적인 단정을 내림으로써 삶의 의지를 회복한다는 내용이다. 즉, 대동강 불놀이의 서경과 화자의 주관교차를 통해 시대적인 아픔과 압박받는 현실에 대한 민족적인 비애 및 우울한 심금을 상징적으로 노래하고 있다.
「불놀이」의 상징적 수법은 프랑스 상징시의 퇴폐적 분위기만을 전달하는 데 그치기는 하였으나, 상징주의를 이 땅에 전하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하였다. 또한, 상징시의 영향 아래 다른 시들이 가지는 리듬의 단조로움과 영상의 단일성을 깨뜨리고 다양하고 복잡한 가락을 넣어서 종래의 우리 시가 갖는 형식이나 기본 율조를 거부하고 있다.
이 시는 언뜻 보기에는 산문의 형태를 취한 듯하지만, 좀 더 자세히 율독하면 3 · 4음절을 율격 단위로 한 3음보의 자유시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은 시 형태면에서 보여준 자유스러운 형식과 표현의 상징적 수법과 대담성 때문에 근대시의 조건을 거의 완벽하게 갖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최근에 근대시의 특징을 갖춘 시는 「불놀이」 이전에도 수편이 발표되었다는 주장에 따라 「불놀이」에 주어진 최초의 자유시로서의 문학사적 의의는 재고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