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위 304∼344. ≪삼국사기≫에는 제6대 구수왕의 둘째아들이고, 제7대 사반왕의 아우라 하였다. 그러나 이 혈족관계는 비류왕의 재위시기와 모순되는 면이 있어 의문점이 있다.
구수왕은 234년까지 재위하였으며, 비류왕은 그보다 70년 뒤에 즉위하여 40년간 재위한 것으로 되어 있어 연대에 무리가 나타난다. 비류왕의 즉위는 그무렵 백제왕실 지파(枝派)들 사이의 세력교체와 함께 이루어졌다.
비류왕의 혈족관계와 재위년 사이의 모순도 그같은 왕실 지파간의 세력교체에 대한 역사서술과 관련된 것일 가능성이 있다. 당시 백제왕실은 개루왕에서 갈라진 고이왕계와 초고왕계의 두 지파가 세력을 다투고 있었다.
초고왕의 아들인 구수왕을 계승한 사반왕은 즉위하자 곧 폐위되었으며, 방계인 고이왕이 왕위를 차지하였다. 그 뒤 왕위는 고이왕의 아들 책계왕과 손자 분서왕에게 계승되었다.
그러나 책계왕과 분서왕 모두가 한군현(漢郡縣) 세력과의 분쟁에서 연달아 피살되는 사태를 당하여, 고이왕계의 세력은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초고왕계인 비류왕의 즉위는 바로 이 때 이루어졌다.
비류왕의 즉위는 초고왕계의 재집권을 뜻한다. 비류왕 다음에 고이왕계인 분서왕의 아들 계왕이 즉위하였지만 그 재위는 2년 만에 끝나고, 다시 비류왕의 아들 근초고왕이 즉위하여 그 뒤 초고왕계내에서 왕위계승이 계속되었다.
‘근초고왕’이라는 왕명은 ‘초고왕’과의 연관성을 나타내는 왕명이라 할 것이다. 초고왕계인 비류왕은 고이왕계의 3대가 집권한 뒤에 즉위하였으므로 그는 구수왕의 아들이 아닌 손자, 또는 보다 먼 후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