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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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하는 모습 / 낙동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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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생활
개념
의복에 묻은 때를 빨아 빼는 일을 가리키는 의생활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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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의복에 묻은 때를 빨아 빼는 일을 가리키는 의생활용어.
내용

빨래는 인류가 의복을 입기 시작하면서부터 행하여진 것으로 원시시대에는 주로 종교적 의미나 예의와 덕행의 의미가 컸다. 그 뒤 문화가 발달함에 따라 빨래는 몸차림을 깨끗이 하여 남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으려는 사교적 욕구에 의해서 행해졌다.

또 더러운 옷은 불쾌하고 건강에 좋지 않음을 깨닫게 된 보건위생적 욕구에 의해 이루어졌다. 더러워진 옷을 그대로 두면 옷이 쉽게 상한다는 것을 알게 됨에 따라 느끼는 경제적 목적 등으로 행하게 되었으며 인간생활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빨래의 방법은 처음에는 물 속에서 빨래를 흔들거나 손으로 비비고 발로 밟는 원시적인 방법이 쓰였다. 그후 점차 도구를 사용하게 되면서 돌이나 방망이로 두드려 빠는 방법이 효과적임을 알게 되었다. 빨래를 방망이로 두드려 빠는 방법은 우리 나라의 전통적인 세탁 방법으로 현재까지도 널리 사용되고 있는 방법이다.

이 방법이 가장 효과적인 세탁방법이라는 것은 현대과학적 실험에 의해서 확인되었다. 그 뒤 세탁을 도와주는 물질을 발견함에 따라 물만을 사용하는 빨래에서 세탁제를 사용하는 방법으로 전환하게 되었는데, 가장 많이 사용된 세제는 재[灰]였다.

재의 주성분은 탄산칼륨으로서 세탁에 알맞은 성분이다. 우리 나라에서 재가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짚을 태운 재가 가장 많이 사용되었다. 지역에 따라서는 경기지방이 콩깍지재, 충청도 지방이 뽕나무재, 강원도 지방이 잠초재를 많이 사용하였다.

잿물을 받는 방법은 시루를 사용하여 밑바닥에 짚 또는 삿갓 떨어진 것을 깔고 그 위에 재를 넣고 물을 부어 아래로 흘러내리는 잿물을 받아낸다. 처음에 흘러내리는 물은 첫물이라고 하는데 대개 색이 불그스름하고 강한 잿물이어서 빨래를 삶는 데 주로 사용하였다. 나중에 흘러내리는 맑은 잿물은 훗물이라고 하여 애벌빨래에 사용하였다.

이러한 잿물로는 주로 면·마직물의 흰옷 세탁에 사용된다. 빨래를 하는 방법은 먼저 애벌빨래라고 하여 빨랫감을 묽은 잿물에 담갔다가 두드려 빤 다음, 잿물과 함께 삶은 다음 다시 두드려 빤다. 흰옷은 냇가의 햇볕에 널어서 바래어 더욱 희게 만들었다.

또 우리 나라 재래의 빨래는 옷의 종류에 따라 그대로 빠는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 빨래에 앞서 전부를 해체하여 빤다. 그 다음 푸새를 하고 다리든가, 다듬이질로 다듬어서 옷감을 바로잡고, 옷을 다시 지어 만들었다. 다리미질은 두 사람이 빨래한 것을 마주 붙잡고 오목한 주철로 만든 다리미에 숯불을 넣어 이것으로 문질러 다렸다.

다듬이질은 물에 축인 빨래를 다듬이돌 위에 올려놓고 다듬이 방망이로 두드려 주름을 펴고 풀을 세워 광택을 내는 것이다. 한 사람이 두 손에 방망이를 잡고 두드리기도 하고 두 사람이 다듬잇돌을 가운데 두고 마주앉아서 맞다듬이질을 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빨래방법은 특히 흰옷을 즐겨 입는 우리 민족이었기에 부녀자에게 과중한 노동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가운데서 우리 나라 특유의 세탁법이 발전하였다고 할 수 있다. 잿물 이외에 여러 가지 물질이 빨래에 사용되었는데 오줌이 사용된 것이 주목된다. 오줌의 성분은 요소이지만 부패하면 가수분해되어 암모니아가 된다.

이 암모니아는 약알칼리로서 훌륭한 세탁효과를 나타낸다. 특히 명주는 알칼리에 약하여 잿물로 빨면 상하게 되므로 오줌을 많이 이용하였다. 이밖에 쌀뜨물, 보리 삶은 물, 녹두물, 두부순물 등이 사용되었는데 이들은 모두 친수성 교질로서 때를 분리, 분산시키는 효과가 있는 물질들이다.

또 콩·녹두·팥 등을 물에 개어서 세수할 때나 비단과 같은 옷감을 빠는 데 사용하였다. 조선말 개화기 이후에는 서구의 비누가 도입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일본을 통하여 도입된 양잿물(수산화나트륨)은 잿물을 대신하여 빨래에 쓰이게 되었다. 양잿물은 부식성이 커서 섬유가 상할 뿐 아니라 위험하기도 하다.

특히 일본인들은 세탁소다라고 하여 덜 독한 탄산나트륨을 사용하면서 우리 나라에는 양잿물을 공급하였는데, 이는 그들의 식민지 정책의 일면을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그 뒤 비누가 본격적으로 생산됨에 따라 빨래 방법도 많이 변하여 삶고 두드리는 방법에서 빨래판을 사용하여 비벼 빠는 방법으로 바뀌게 되었다.

1960년대 이후에는 석유화학계인 합성세제가 생산되고, 전기세탁기가 일반화되면서 직접 손으로 빠는 세탁 방법은 점차 사라지고 기계를 이용한 세탁 방법이 주를 이루고 있다. 또한 다양한 세탁 첨가제가 개발되어 빨래를 더욱 쉽게 해주고 있다.

참고문헌

『규합총서』
『피복관리학』(김성련·이순원, 교문사, 1977)
『한국민속대관』 2(고려대학교민족문화연구소, 1980)
집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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