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권 6책. 필사본. 서문과 발문이 없어 편자와 필사 연대를 알 수 없다. 연세대학교 도서관에 있다.
권1∼4에 시 747수, 권5∼7에 소차(疏箚) 56편, 주의(奏議) 6편, 서(書) 5편, 서(序) 4편, 기(記) 34편, 설(說) 1편, 권8∼10에 교서(敎書) 1편, 치사(致詞) 2편, 전문(箋文) 3편, 묘지명 3편, 시장(諡狀) 5편, 제문 6편, 상량문 1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술회(述懷)」는 710구에 달하는 장시이다. 저자의 출생·가계·학문·관직·사상·교양 및 군친(君親)간의 대화 등 일생에 있었던 일을 기록한 것으로, 저자의 인물 연구는 물론 당시 세도가와 관련된 사회와 정치 문제 등의 연구에 참고 자료가 된다.
「인재이진면차(因灾異陳勉箚)」는 1847년(헌종 13) 교리(校理)로 있을 때 도덕정치의 실현을 촉구해 올린 글이다.
「청본도설진구폐소(請本道設賑救弊疏)」는 1852년(철종 3) 황해도관찰사로 있을 때 올린 것이다. 1850년부터 2년간의 홍수로 백성이 곤궁하니 대책을 수립해 재민을 구제할 것을 청한 내용이다. 인도정치를 주장한 당시 정치인들의 정치사상을 대변하고 있다.
「시헌기요서(時憲紀要序)」는 남병길(南秉吉)이 지은 『시헌기요(時憲紀要)』에 붙인 서문이다. 당시의 역상학(曆象學)·수학·음양학 등 천지 운행의 도수와 일식·월식에 대한 학문 및 원(圓)과 타원의 측량 방법 등을 모아 『시헌기요』를 편저했다고 그 내용 및 의의를 설명한 것이다.
이밖에도 어영청의 폐단을 구해줄 것을 요청한 「어영청구폐소(御營廳救弊疏)」와 여주 신륵사를 중수하면서 그 동기와 내역을 적은 「신륵사중수기(神勒寺重修記)」, 춘당대의 석축을 건의한 「춘당대청축석대주의(春塘臺請築石臺奏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