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후기인 1275년(충렬왕 1)에 국자감(國子監)이 국학(國學)으로 개칭되면서 사업(司業, 종4품)이 사예로 고쳐졌으나 23년 뒤에 사업으로 환원되었다.
뒤에 악정(樂正, 종4품)이 사예로 고쳐졌다가 1356년(공민왕 5)에 사업으로, 6년 뒤에 다시 사예로 고쳐졌다. 조선 건국 직후 악정 2인이 정4품으로 승격되어 설치되었으나, 1401년(태종 1)에 사예로 바뀌고 3인으로 증원되었다.
성균관유생들에게 음악을 지도하는 관직으로 1658년(효종 9)에 좨주(祭酒) 2인이 성균관에 따로 설치되어 송시열(宋時烈)·송준길(宋浚吉)이 이를 겸임하게 된 뒤 1인이 감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