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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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정보
서울 사직단 전경
서울 사직단 전경
유교
유적
문화재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있는 조선전기 종묘와 함께 토지신과 곡물신에게 제를 올리던 제단.
국가지정문화재
지정 명칭
사직단(社稷壇)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국가유산청 사적(1963년 01월 21일 지정)
소재지
서울 종로구 사직동 1-28번지
목차
정의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있는 조선전기 종묘와 함께 토지신과 곡물신에게 제를 올리던 제단.
내용

사직단의 위치는 『주례(周禮)』에 잘 규정되어 있는데, ‘오른쪽에 사직, 왼쪽에 종묘’라 하였다. 이 규정은 법궁을 중심으로 사직은 오른쪽에, 종묘는 왼쪽에 둔다는 뜻이며, 중국이나 우리나라 모두 준수하는 경향이 있었다. 또한 종묘는 수도 한 곳에만 설치하는 데 반해 사직은 수도뿐만 아니라 지방 행정단위인 주현(州縣)마다 설치하였다. 주현의 사직도 관아의 서쪽, 곧 오른쪽에 세웠다.

사직단은 사단(社壇)과 직단(稷檀)을 따로 설치하였으며 사단은 동쪽에, 직단은 서쪽에 위치하였다. 각 단에는 다섯 가지 색깔의 흙을 덮었는데 동은 청색, 서는 백색, 남은 적색, 북은 흑색, 중앙은 황색 흙으로 하였다. 또한 각 단에는 신위를 모셨는데 사단에는 국사신(國社神)을 북향하여 모시고 후토신(后土神)을 동향하여 배향하였으며, 직단에는 국직신(國稷神)을 북향하여 모시고 후직신(后稷神)을 동향하여 배향하였다. 각 단에는 사방으로 계단을 설치하였으며, 단 둘레에는 유(壝)라고 하는 울타리를 치고 그 유에도 사방으로 문을 설치하였다. 이러한 형식은 후대에도 크게 변화가 없었다.

보통 도성의 서쪽에 사직단을 설치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한성부 의인달방(儀仁達坊)에 있는데 지금의 사직공원 자리이다.

그 규모는 단을 2개로 만들어 사단(社壇)은 동쪽에, 직단(稷壇)은 서쪽에 배치하여 사방이 각각 2장 5치로 북쪽에서 남으로 향하게 하였고, 높이는 3척인데 사방으로 계단 3층을 쌓았다. 단상에는 각각 2척 5치 정도의 석주(石柱)가 있다.

사단에는 국사(國社)의 신위를 남쪽에서 북을 향해 봉안하고 후토신(后土神)을 배향시켰으며, 직단에는 국직(國稷)의 신위를 봉안하고 후직(后稷)의 신을 배향시켰다. 1393년(태조 2) 풍수학인(風水學人)인 이양건(李陽建)과 배상충(裵尙衷)을 시켜 자리를 잡게 하고 이듬해 현재의 자리에 세웠다.

위판(位版)은 길이가 2척 2치 5푼, 너비가 4치 5푼, 두께가 7푼이며, 받침의 둘레는 사방이 8치, 높이는 4치 6푼이다. 모두 봉산(封山)의 밤나무로 만들었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강화도로 옮겼다가 훼손되어서 다시 건립하였다.

부속 건물은 전사청(典祀廳) · 집사청(執事廳) · 부장직소(部長直所)가 있다. 1694년(숙종 20)에 중수하면서 전사청과 좌우 집사청을 세웠고, 1702년 부장직소를 후면에 건립하였는데, 위치가 출입하는 사람을 살피는 데 불편해 1742년(영조 18) 출입문 옆으로 옮겨 지었다.

제례는 문묘(文廟)와 종묘의 예에 따르고 2월과 8월 및 동지와 제석(除夕)에 행하였다. 그 밖에도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의 제례와 가뭄에 비를 비는 기우제(祈雨祭)와 풍년을 비는 기곡제(祈穀祭) 등을 여기에서 지냈다. 또한, 각 지방에도 관아의 서쪽에 사직단을 세우고 제사지내 국태민안과 풍년을 빌게 하였다.

조선시대 지방에 산재하였던 사직단은 대부분 사라졌다. 현재 지방에 남아 있는 사직단은 노변동사직단(대구광역시 기념물, 2006년 지정), 남원사직단(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 1992년 지정), 보은회인사직단(충청북도 기념물, 2013년 지정), 산청단성사직단(경상남도 기념물, 2005년 지정), 창녕사직단(경상남도 기념물, 2011년 지정) 등이며, 국가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참고문헌

『춘관통고(春官通考)』
집필자
권영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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