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구 한남동과 연결되었다. 사평도(沙平渡 : 모래펄나루)의 다른 명칭으로 고대에는 사리진도(沙里津渡 : 모래펄나루)라 불렸으며 조선시대는 한강도(漢江渡)라 불렸는데, 이 한강도는 조선시대 한강에 설치된 최초의 나루터 중의 하나였다.
기록에 의하면 한강도는 강북의 한강진과 강남의 사평리간을 잇는 나루라 하였는데, 사평리의 위치는 문헌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다. 그러나 사평리가 한강진의 대안이라 하였고 한강진은 현재의 한남대교(漢南大橋) 서쪽에 위치하였던 것으로 보아, 한강도는 현재 한남대교 부근에 위치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서울에서 이 나루를 지나면 충청도와 경상도 방면의 대로와 연결이 되어 교통의 요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처음은 도승(渡丞)을 두어 출입하는 사람들을 살피도록 하였으나 뒤에 별장(別將)으로 고쳤다. 나루에 속한 선박은 최고로 많을 때는 15척까지 있었으며 주로 관공리(官公吏)의 출입이 있었던 곳이다.
교통의 요지로서의 역할 이외 한강변의 암석에 척촌푼수(尺寸分數)를 새기고 표(標)를 세워 한강의 깊이를 측정하는 임무까지 겸하였다. 조선시대 서울로 들어오기 위한 주요관문이었던 사평나루는 한남대교의 가설로 경부고속도로와 연결되어 서울로 들어오는 관문의 구실을 지속적으로 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