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년 김우진(金祐鎭)이 지은 희곡.
3막. 1926년 봄부터 구상하여 출분 뒤 동경(東京)에서 8월에 탈고한 그의 자전적인 작품이다. 친구였던 조명희(趙明熙)의 시 「봄잔디밭 위에」라는 작품에서 영감을 얻었기 때문에 처음 제목은 ‘봄잔디밭 위에’였다.
「산돼지」는 시와 희곡의 조화를 꾀한 작품이면서 동시에 가장 자전적이며, 그가 쓴 희곡 5편 중 자살하기 직전에 쓴 마지막 작품이다.
낭만성이 짙은 이 작품은 본격적 표현주의 희곡으로서 사회개혁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며, 식민지시대라는 상황에서 봉건적 인습의 고옥(古屋) 속에 유폐되어 몸부림치던 개화 초기 지식인의 좌절을 가장 절실하게 묘사하고 있다.
주인공 원봉은 구국전선에 나섰다가 죽은 동학군의 아들이며, 마을의 청년회 상무간사로서 공금유출 혐의를 받고 불신임 직전에 놓인 상황에 놓여 있었다. 또한 누이동생 영순을 사랑하고 있는데, 이러한 모든 비정상적인 상황을 산돼지를 집돼지로 길들이려는 사회의 모순과 연결시키고 있다.
원봉의 어머니는 그를 잉태하고 있을 때 동학란이 일어나 쫓겨다니던 중 관군(官軍)에게 강간을 당하였고, 원봉을 낳은 지 며칠 만에 죽었다. 원봉은 최주사댁에서 길러졌는데, 그녀에게 영순이라는 딸이 있었다.
영순의 아버지는 원봉과 영순을 결합시키라는 유언을 남겼으나, 최주사댁은 비밀을 덮어두고 영순을 원봉의 친구인 혁과 혼인시킨다. 원봉은 꿈속의 환각을 통하여 출생의 비밀을 알아내고 동학군인 아버지도 만나나, 현실적으로 행동을 하지 못하고 공상만 하는 무능한 인물이다.
원봉은 무한한 자유를 갈망하고 있으나, 혈연적이며 가정적인 일상생활의 테두리 속에 갇혀 있던 까닭에 아무 행동도 하지 못하는, 산돼지를 집돼지로 걸식시키게 하는 1920년대의 전형적인 지식인으로 그려져 있다.
이 작품은 작가 자신이 고백하였듯이, ‘자신의 생의 행진곡’으로서 개화기 지식인의 고뇌를 함축해놓은 희곡이다. 특히 자연주의·상징주의·표현주의의 방법을 광범위하게 차용하여 새로운 연극적 실험을 한 점은, 아직 신극(新劇)이 정립되지 않은 1920년대의 실정에서는 매우 선구적인 일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