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위 477∼479. ‘삼걸왕(三乞王)’ 또는 ‘임걸왕(壬乞王)’이라고도 표기되었다. 문주왕의 맏아들로서 477년 9월 문주왕이 피살된 상태에서 13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하였다.
당시 백제는 고구려에게 쫓겨 웅진으로 천도한 475년(문주왕 1) 이래로 왕실의 권위가 떨어지고, 귀족들이 발호하여 통제하기 어려웠다. 또한, 마한계 세력들이 새로운 집권층으로 등장하며, 구래의 부여계 귀족들이 주도하던 권력체계를 무너뜨림에 따라 정국은 더욱 어지러웠다.
이러한 와중에서 문주왕은 권력을 장악한 병관좌평(兵官佐平) 해구(解仇)에 의하여 살해되고, 삼근왕이 즉위하였다. 해구의 권력은 이미 문주왕으로서도 제어하지 못하였으니, 어린 나이로 즉위한 삼근왕도 모든 정사를 그에게 일임할 수밖에 없었다.
해구는 그뒤 삼근왕 2년 신흥세력인 은솔(恩率) 연신(燕信)과 더불어 대두성(大豆城)에서 반란을 일으켰다가 토벌되었다. 당시 해구의 반란을 토벌한 것은 한성시대(漢城時代) 이래의 또다른 귀족세력 출신인 진씨(眞氏)세력이었는데, 해구의 반란이 평정된 다음해 삼근왕이 죽은 것을 진씨세력의 정치적 변란의 결과로 보는 견해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