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쪽은 갑산군·혜산군, 서쪽은 평안북도 후창군, 남쪽은 풍산군·장진군, 북쪽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만주의 장백현과 경계하고 있다. 동경 127°16′∼128°16′, 북위 41°02′∼41°27′에 위치하며, 면적 1,795.4㎢, 인구 5만 421명(1944년 현재)이다. 7개 면 199개 이로 되어 있으며, 군청 소재지는 삼수면 중평장리이다.
이 군은 높이 1,000m 이상의 고산준봉들이 잇달아 기복하고 있는 고원지대에 속한다. 동쪽 삼수면과 갑산군 산남면과의 경계에 은린령(隱麟嶺, 1,936m), 활기봉(闊起峰, 1,435m), 호인면에 고련봉(高連峰, 1,263m)이 있고, 서쪽 후창군과의 경계에 형천산(衡天山, 1,463m)·시지령(柴芝嶺, 1,619m)·전지산(田地山, 1,623m)·남사산(南社山, 1,787m)·황야봉(黃野峰, 1,874m)·희색봉(稀塞峰, 2,185m) 등이 있다.
남쪽에는 직동령(直洞嶺, 1,622m)·이승령(李僧嶺, 1,625m)·청산령(靑山嶺, 1,782m) 등이 군의 경계에 있고, 중앙부에는 두릉봉(杜陵峰, 1,925m)·일자봉(一字峰, 1,517m)·소두릉봉(小杜陵峰, 1,612m)·백산령(白山嶺, 1,498m) 등이 있다.
삼수면과 관흥면과의 경계에 있는 관동령(館洞嶺, 1,627m)에서 발원하는 중평천(仲坪川, 일명 三水川)이 군의 동부를 북류해 압록강에 흘러들고, 장진강(長津江)은 함주군 마대산에서 발원해 군의 서남단에서부터 동북류해 압록강에 흘러 들어간다.
한편, 허천강(虛川江)이 본래는 이 군의 관할이었던 혜산군 별동면을 서북류해 호인면 곤평리에서 압록강과 합류하므로, 압록강·허천강·장진강의 세 강에서 이 군의 ‘삼수’라는 명칭이 유래된 듯하다.
이 밖에 관흥면에서 발원한 삼덕천(三德川)이 금수면 성내리에서 중평천과 합류하고, 자서면의 상거천(上巨川)이 상동구리에 이르러 장진강과 합류하며, 희색봉에서 발원한 신창동천(新昌洞川)이 삼서면 강응계리에서 장진강과 합류한다.
지질은 대체로 현무암층이다. 고위도 내륙지방의 고원지대이므로 대륙성 기후의 성격이 강하며 전국에서 가장 추운 지역이다. 연평균기온 2.1℃, 1월 평균기온 -18.8℃, 8월 평균기온 18.9℃이고, 연강수량은 628㎜이다. 서리는 9월 초에 내려 이듬해 5월 중순까지 계속되며, 얼음은 9월 말에서 이듬해 4월 말까지 계속된다.
[고 대]
이 군에서는 구석기 및 신석기·청동기시대의 유물·유적이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인접한 자성군에서 신석기 및 청동기시대의 유물과 주거지가 발견되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적어도 신석기시대 이후에 사람이 살았을 가능성이 있다.
역사시대에 들어와서 일찍이 북옥저에 속해 있다가 고구려가 흥기하면서 태조왕대에 고구려 영토로 편입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발해시대에는 서경압록부(西京鴨淥府)에 속해 있었다.
[고 려]
발해가 망한 뒤 이곳은 오랫동안 말갈족과 거란족이 할거하는 지역이 되었다. 1356년(공민왕 5)에 이르러서 공민왕이 반원정책으로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를 공략해 이곳에 화주목(和州牧)을 설치하고, 이어서 삼살(三撒 : 지금의 北靑)을 점령하고 이곳을 근거지로 해 복주(福州 : 뒤에 端州로 개칭)·길주 등지로 북진의 노력을 계속하였다. 이 때문에 함경남도는 대체로 수복되었다.
1388년(우왕 14) 이성계(李成桂)가 위화도(威化島)에서 회군해 실권을 장악하자 그의 선조가 출생하고 성장한 땅을 회복한다는 뜻에서 북진정책을 추진해, 1391년(공양왕 3) 본래 허천부(虛川府)로 알려져 있던 곳을 갑주(甲州)라 칭하고 만호부(萬戶府)를 두어 다스렸다.
[조 선]
1413년(태종 13) 10월 갑주를 갑산으로 고치고 1415년 군으로 승격시켰다. 당시 갑산군은 삼수를 비롯해 여연(閭延)·후주(厚州)·무창(武昌) 등의 여러 지역을 관할하고 있었다. 1441년(세종 23)삼수보(三水堡)를 설치해 만호를 두고 야인들을 통제하였다. 1446년 군으로 승격되어 비로소 삼수군이 성립되었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당시의 호구는 113호에 348명이었다고 한다.
1454년(단종 2) 군을 폐지하고 다시 만호를 두었다가 1461년(세조 7) 갑산군이 군사상 중요한 곳이라 해 도호부로 승격시키는 한편, 삼수보도 다시 군으로 환원하였다. 이듬해 도호부로 승격시켰다가 1464년 다시 군으로 낮추었다. 삼수라는 명칭은 큰 세 물줄기가 이곳에서 합류해 압록강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1696년(숙종 22) 병자모역(丙子謀逆)의 주모자인 이동량(李東梁)과 연관이 있다 해 현으로 강등되었다. 1710년 갑산과 같이 북단에 위치해 그 중요성이 6진과 다를 바가 없다고 해 다시 도호부로 승격하였다. 『여지도서』에 따르면 15사(社) 아래 호구는 1,550호에 7,675명이었다고 한다.
[근 대]
1895년의 지방관제 개편에 따라 삼수부는 군으로 개편되어 갑산부에 소속되었고, 이듬해 다시 13도제가 실시되면서 삼수군은 함경남도에 속하게 되었다. 1942년 7개 면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1943년의 인구통계에 따르면 8,851호에 5만 2248명이었다. 이 지역은 압록강에 면해 있어 만주로의 출입이 쉬웠기 때문에, 의병 또는 무장독립단체에 가입해 활약한 사람이 많았다.
이 고장은 북쪽 국경지대로 조선 초기까지만 해도 야인들의 거주지였던 관계로 유적도 주로 야인의 침입을 막기 위한 방어목적의 성곽 등이다. 삼수읍성(三水邑城)은 1441년에 축성되었으며 둘레 1,737.7m, 높이 2.7m의 석성이다. 치첩(雉堞 : 성가퀴) 191개, 거(渠) 58개, 보루 8개, 우물 3개를 갖추고 있다.
그 주위로는 호인면 보성리에 둘레 119.8m, 높이 2.7m의 인차외보(仁遮外堡)가 있고, 신파면 보리에 둘레 909.1m, 높이 2.7m의 석성 나난보(羅難堡)가 있다. 또 신파면 소농리에는 둘레 364.1m, 높이 2.7m의 소농보(小農堡)가 있다.
신파면 신갈파리에 둘레 1,061m, 높이 2.7m의 신갈파진보(新乫坡鎭堡)가 있으며, 신파면 구갈파리에 둘레 475.7m, 높이 3m의 구갈파지보(舊乫坡知堡)가 있다. 신갈파진은 1464년에 군아(郡衙)가 이곳으로 옮겨졌으며, 대안무역의 거점으로 번창하였다.
또 자서면 상동구리에는 둘레 231.8m, 높이 1.9m의 자작보(自作堡), 삼서면에는 둘레 54.5m, 높이 1.3m의 묘파보(廟坡堡)가 있으며, 삼서면에는 둘레 393.9m, 높이 2.7m의 별해진(別害鎭), 호인면 운전리에는 길이 459.7m의 석성인 압록강행성과 삼수보 등 국방요새인 진·보가 여러 요충지에 있다.
삼수보는 1441년 만호부를 두어 야인을 방어하였다. 특히 삼수읍성에는 축성시 건립한 사대문 중 유일하게 조일문(朝日門)이 남아 있다. 이 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누각형 문루로 1441년 축성 당시의 원형대로 보전된 성문이다.
사찰로는 호인면 과전리에 1570년에 건립한 것으로 추정되는 중흥사(重興寺)가 있다. 이 밖에 중평장(仲坪場)·원덕장(院德場) 등 군사훈련을 위해 조성한 장소가 지금도 남아 있다.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는 삼수향교(三水鄕校)가 있다. 삼수향교에 관해서는 『태조실록』 태조 4년 12월 14일(癸卯)조에 “임금께서 멀리 함경북도 경흥에서부터 북으로 갑산에 이르기까지 모두 학교를 세우고 선비를 모아 경서를 가르치라…”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조선 초기에 설립된 것으로 짐작된다.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향교는 금수면 성내리에 있었으며 근래에 관흥면 삼덕리로 이전하였다.
근대교육기관으로는 3·1운동을 전후해 설립된 공·사립 보통학교가 있으며, 중등 이상의 교육기관은 없었다. 1945년 현재 국민학교 12개교, 4년제 간이학교 4개교, 2년제 농림학교 1개교가 있다. 종교기관은 불교사찰 1개, 개신교교회 5개가 있으며, 금수면에는 천도교인이 많다.
이 고장은 갑산과 더불어 상호보완적인 자연의 지세를 지니고 있어, 산수의 수려함이 한층 더 빛을 발하는 곳으로, 신화·연기설화·누정 및 다리에 얽힌 설화 등이 많이 전해 오고 있으며, 전쟁설화·맹수설화도 있다.
신화로는 삼수의 〈천지창조신화〉가 있는데, 갑산과의 거리는 걸어서 불과 이틀 걸리는 곳이지만, 주로 산으로 ‘사다리길’을 기어 지나거나 ‘허공다리’를 타고 넘어야 가능하였다. 따라서 아주 옛적에 해모수도 이곳을 다니려면 상공의 하늘나라를 통해 수레를 타고 내왕했다고 한다.
또 백두산 위에 계시는 천제께서는 화합을 위해 신단지지(神壇之地)를 성역화하려고 백두산의 물, 장백산의 물, 함흥부 부전고원의 물을 서북쪽으로 끌어올리고 ‘삼수’라 칭하였다. 여기서 삼수군과 관계되는 연기설화가 탄생되었다. 일설에 따르면 어면강(魚面江)·압록강·삼수통수(三水洞水)의 세 갈래 물 사이에 이 군이 있어서 ‘삼수’라 했다는 것이다. 이 삼수통수는 동굴 속에서 물이 솟아난다고 한다.
이 밖에 이계손(李繼孫)이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평정하고 북방을 진압한 뒤 칼을 쓰다듬었다는 이야기를 지닌 〈무검정설화 撫劍亭說話〉, 난리를 평정하고 칼을 씻었다는 〈세검정설화 洗劍亭說話〉, 허공다리에 얽힌 〈허공교설화 虛空橋說話〉 등이 있다.
이 고장의 민요로는 산을 소재로 한 〈산타령〉, 곡식을 희구하는 〈농사타령〉, 변화무쌍한 기후로 인한 자연의 이변 때문에 생긴 〈기후타령〉 및 〈태평세월타령〉 등이 많이 전해 오고 있다.
〈육자배기〉를 보면 “산이 높은 저 고개에/자고 가는 저 구름아/너희가 봄이 되어/나의 소원 싯처주리/아마도 님 계신 곳/처절 처절 올꺼나.”와 같이, 가사가 다른 지방보다 독특하다. 〈아르랑〉만 해도 다른 고장의 〈아리랑〉과 그 착상이 달라 “아르랑 고개에다 정거장 짓고/님 오기만 고대 고대로다/아르랑 아르랑 아라리요/아르랑 속에서 노다 가게.”로 되어 있다.
힘겹게 사는 산골이라 노동요가 구성지다. “우리 세계 인간사를/돌아보니 만가지라/그 중에도 천재(賤才)됨은/사는 노름 세가지라/농부되어 밭을 갈고/목수되어 집을 짓고/누에치고 면화심어/길쌈하니 옷감이라/부귀공명 무엇인고/성현고걸 이것일세.”와 같이 억지로 자기 만족에 잠기려 한다.
이 고장에는 담배가 귀하기 때문에 담배에 관한 타령이 있는데, 물론 〈담바귀타령〉은 여기저기 있지만 삼수의 〈담바귀〉는 색다른 상념이 있다.
“귀야귀야 담바귀야/동래 울산에 담배귀야/너희 나라는 어떻길래/대한의 제국에 왜 나왔나/우리 나라도 좋건만은/대한제국에 유람왔네/은을 주려 나왔느냐/금을 주려 나왔느냐/은도 없고 금도 없고/담바귀씨를 가지고 나와/저게 저게 저산 밑에/담바귀씨를 훌훌 뿌려/아침이면 찬 이슬 맞고/저녁이면 냉수 주어/겉에 곁잎 다 저치고/속에 속잎 곱게 길러/네모번뜩 드는 칼로/어슥비슥 썰어 놓고/청동화로 백탄 숯을/이글이글 피워 놓고/소상반죽 열두마디/맵씨있게 맞춰 놓고/담배 한대 먹고 나니/목구멍 안에 안개 돈다/또 한대 먹고 나니/목구멍 속에 청룡 황룡 꿈틀어졌다.”와 같다.
이 밖에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태평요 太平謠〉가 있고,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앞잡이인 헌병보조원을 조롱하는 신식의 민요가 있으며, 좀 장황스러운 단가가 유행되기도 하였다. 이 고장은 문자 그대로 첩첩산중이므로 다른 지역에 비하면 옛날 그대로의 변하지 않은 민요가 많이 남아 있는 것이 특색이다.
민속놀이로는 설과 대보름의 윷놀이·널뛰기, 시월상달의 단군제 때 어른들의 망돌치기, 어린이들의 활쏘기놀이가 있다. 삼수의 큰 명절은 한식·단오·추석인데, 이 때 놀이는 다른 군과 대동소이하나, 특이한 것은 시월상달에 지내는 단군제(檀君祭)로 10월 1일부터 10일까지 열흘간 온통 잔치로 들뜬다. 아마도 백두산 신단설화가 각 가정에 깊숙이 유포된 데서 유래된 것 같다.
남자어른들이 즐기는 망돌치기는 평평한 돌을 가지고 던지는 놀이인데, 여러 가지 규칙을 정해 경기를 하는 이 고장의 독특한 놀이다. 어린이들의 활쏘기놀이는 단순한 놀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를 잡는 경기도 한다. 뽕나무로 만든 활로 화살을 메겨 산 위를 향해 쏘아대면 뒷날 큰 인물이 된다는 이야기가 전해 오고 있어서, 어린 시절에 활쏘기놀이를 하도록 장려하는 것 같다.
이 고장은 외진 산악지대이므로 자연에 대한 두려움과 경이, 각종 재난방지 등으로 다른 지방에 비해 동제를 열성적이면서도 풍족하게 지낸다. 산신(山神)·동신(洞神)·여역신(癘疫神)을 대상으로 산신제·천제·여제 등을 각각 지내며, 이 중에서도 동신과 여역신의 제를 올리는 동제가 가장 많다. 대개는 평지의 정결한 곳에 신단(神壇)을 미리 만들어 제를 고정된 장소에서 올리는 것이 상례이다.
동제는 정월과 7월에 점을 쳐서 길일을 택해 지내는데, 다른 지방처럼 제찬은 각 집에서 준비하며, 마을 공동으로는 소나 돼지를 잡아 고기꼬치를 만들어 각 가정의 제상에 공평하게 분배해 진설해 놓고 오후 3시쯤 제를 지낸다. 초헌·아헌·종헌의 차례로 헌작, 배례하며 ‘육제축문’을 고축하는데, 내용은 마을의 형복(亨福)과 안녕을 동신과 여신에게 비는 것으로 되어 있다.
산신제는 각각 소제로서 명산심곡에 가서 지낸다. 이 고장의 동제는 일반화되고 전 군민의 행사처럼 되어서 사람들이 유교적 의식에서 온 줄로 착각할 만큼 크게 지낸다. 일단 동젯날이 정해지면 온 마을은 살생을 엄금하고 모두가 경건한 마음을 가지는데, 만일 신목(神木)을 다치게 한다든가 찍어 없애면 반드시 마을 전체가 큰 화를 입게 된다는 터부가 있어서 신단이나 신사 근처는 경원하는 풍조가 크다.
제가 끝나면 각 가정에서는 분배한 육류로 온 집안 식구는 물론, 친척·손님까지 초청해 나누어 먹으면서 하루를 즐긴다.
주민의 90% 이상이 농민이므로 주산업은 농업이다. 그러나 산간고원지대이기 때문에 밭농사가 주를 이루고, 화전을 경작하는 경우도 많다. 1945년 현재 총농경지는 340.5㎢이며 경지율은 18.9%이다.
이 중 논은 총경지의 1.8%에 불과하고 밭이 63.9%, 화전이 34.3%나 된다. 따라서 쌀 생산량은 극히 적으며, 귀리·감자·보리·조·콩·피·메밀 등을 주로 생산한다. 농가부업으로 축우사육과 양돈·양계·양잠을 하며, 유벌(流筏)에 사용되는 타래목을 제조한다.
전체 군면적의 72%가 성림지(成林地)이므로 임산자원이 풍부해 채벌과 제재업이 활발하다. 신갈파 및 중평장 등지의 제재소에서 소요되는 원목은 대부분 장진강 유역과 중평천 상류지역 및 관흥면 관동지역에서 산출된다.
그 밖에 모피와 인삼이 산출된다. 광업으로는 곳곳의 강변이나 밭, 야산의 동굴 등 많은 곳에서 사금을 채취한다. 공업은 수공업으로 삼베·명주를 제조하며, 금수면 인동리에 아마공장과 홉공장이 있다. 〈盧道陽〉
상업활동은 상설장과 5일 정기장을 통해 이루어진다. 1921년의 시장은 중평장·영성장·상거장·삼덕장 등이 공설로 되어 있었고, 1941년 매일시장으로 삼수면중평장, 신파면신갈파장, 호인면보인리장이 섰다. 5일 정기장으로는 4·9일의 금수면성내장, 자서면상동구리장, 5·10일의 호인면영성장, 삼서면면보장, 관흥면삼덕장 등이 섰다.
이들 시장의 주거래품은 미곡·전분·들기름·누룩·베·견직물·무명 등의 농·공·임산품과 소·돼지·닭 등의 가축이었다. 특히 신갈파장은 우시장이 유명하며, 중평장은 녹용·인삼 등의 한약재의 집산지로 유명하였다. 시장은 물물교환의 장소뿐만 아니라 교제장소로도 이용되었다.
도로는 의주∼혜산간의 2등도로가 압록강 연안을 따라 군의 북부를 동서로 통과한다. 동부에 신갈파-금수-중평장간의 도로가 통과해 갑산·풍산을 거쳐 북청·함흥의 철도선에 연결된다. 중앙에는 자서면 상동구리에서 백산령을 넘어 금수면 중리에 도달하는 3등도로가 동서로 지나며, 서부에는 신갈파∼어면보간의 도로가 개통되어 이승령을 넘어 장진군에 이른다.
[관흥면館興面]
군의 남부에 있는 면. 면적 334.7㎢, 인구 9,380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삼덕리이다. 본래 갑산군 지역이었으나 1896년 삼수군이 설치되면서 이 군에 속하였다. 서쪽에 두릉봉, 남쪽에 관동령, 북쪽에 소두릉봉과 백산령이 솟아 있어 면 전체는 고원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중평천이 관동령에서 발원하며, 삼덕천이 동부를, 상거천이 서부를 각각 북류하면서 하천연안에 계곡을 형성하였다. 화전경작이 많아 주로 감자·귀리·메밀·대마·조 등을 생산하며 소의 사육도 활발하다. 목재의 생산이 많으며, 특산물로는 인삼·녹용 등이 있다. 교통은 자서면 상거리와 금수면 중리간의 도로가 동북단을 가로지를 뿐 도로가 미비해 불편하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개교, 간이학교 1개교가 있다.
삼덕(三德)·동화(東和)·상청계(上淸溪)·대청계(大淸溪)·소청계(小淸溪)·개운성(開雲城)·복서(福西)·대서(大西)·인순(仁淳)·석곡(石谷)·상은산(上銀山)·하은산(下銀山)·사품(寺品)·청학(淸鶴)·생양(生陽)·채가(彩佳)·고암포상(高巖浦上)·고암포하(高巖浦下)·수인(守仁)·서덕(西德)·삼포(三浦)·대장(大藏)·소장(小藏)·장수(藏修)·흑연(黑硯)·상두릉(上杜陵)·중두릉(中杜陵)·하두릉(下杜陵)·간령(間嶺) 등 29개 이가 있다.
[금수면襟水面]
군의 동부에 있는 면. 면적 146.5㎢, 인구 5,562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성내리이다. 본래 갑산군 지역이었으나 1896년 갑오개혁으로 삼수군이 설치되면서 이 군에 속하였다. 삼수군의 군청 소재지였으나 차도선(車道善)의 의병으로 병화를 입자 군청을 삼수면 중평장리로 옮겼다. 이로 인해 지금도 성내리를 ‘삼수’라고 부르기도 한다.
고원지대이지만 험준한 산은 없고 중평천이 면의 중앙을 북류하면서 주위에 평지를 전개하며, 삼덕천이 서북부를 지나 성내리에서 중평천과 합류한다. 주요 농산물은 귀리·감자·메밀·조·콩·피 등이며, 소·돼지·닭 등의 사육도 활발하다.
도로는 신갈파-금수-함흥을 잇는 2등도로가 중앙을 남북으로 지난다. 유적으로는 성내리에 삼수읍성이 있다. 이 성은 주위 1,737m, 높이 2.7m의 석축으로 포가 58대, 누대가 8개 있으며, 성안에 우물이 3개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개교, 농림학교 1개교가 있다.
성내(城內)·인동(仁洞)·신촌(新村)·탑동(塔洞)·억두(億斗)·용천(龍川)·관동(館洞)·용수(龍水)·일건(日乾)·장항(長項)·간천(間川)·반룡기(盤龍基)·가매덕(佳梅德)·신성(新成)·중(中)·함포(咸浦)·속사(束沙)·상삼흥(上三興)·하삼흥(下三興)·수차(水遮)·농막(農幕)·신흥(新興)·남산(南山)·양응(兩應)·봉덕(鳳德) 등 25개 이가 있다.
[삼서면三西面]
군의 서부에 있는 면. 면적 569.2㎢, 인구 4,453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보성리이다. 본래 갑산군에 속했으나 1896년 삼수군이 설치되면서 이 군에 속하게 되었다.
동쪽에 두릉봉이 솟아 있고, 서쪽 군계를 따라 형천산·시지령·전지산·남사산·황야봉·희색봉이 연달아 있으며, 남쪽에는 직동령과 이승령이 있어 면 전체가 산악지대이다. 다만 장진강이 면의 서남부에서 동부로 흐르고, 신창동천이 서남부를 흘러 장진강에 합류하면서 유역에 곡저평야를 전개하고 있다. 밭농사와 화전경작이 활발해 감자·귀리·메밀 등의 잡곡을 주로 생산한다.
장진강 유역의 삼림에서 목재를 벌채하며, 인삼·녹용·더덕 등이 산출되기도 한다. 도로는 신갈파∼차천선이 어면보(魚面堡)를 거쳐 이승령을 넘어 장진군에 이른다. 유적으로는 보성리에 둘레 580m, 높이 2m의 석축으로 된 어면보가 있고, 그 밖에 서부에 신방보(神方堡)·묘파보·별해진 등의 요새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2개교가 있다.
보성(堡城)·신창(新昌)·희사봉(希沙峰)·강응계(江應界)·상진목(上眞木)·하진목(下眞木)·용암(龍巖)·장재기(長在基)·장항(獐項)·자지(紫芝)·상니구지(上泥龜地)·구지(龜地)·지야덕(芝野德)·계양(啓陽)·금천포(金川浦)·간포(間浦)·연평(淵坪)·동동(銅洞)·성기(城基)·사평(沙坪) 등 20개 이가 있다.
[삼수면三水面]
군의 동남부에 있는 면. 면적 169.7㎢, 인구 5,767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중평장리이다. 본래 갑산군 지역이었으나 1896년 삼수군이 설치되면서 이 군에 속해 삼남면(三南面)이라 불렸고, 1942년 삼수면으로 개칭되었다.
동쪽 갑산군과의 경계에 은린령, 서쪽 관흥면과의 경계에 관동령 등이 있으며, 면내에 화개봉(華蓋峰, 1,594m)이 솟아 있어 산악지대를 이룬다. 중평천이 서남단에서부터 동북, 북류해 군의 중앙을 통과한다.
주요 농산물은 화전경작에 의한 감자·대마·메밀·귀리 등이며, 소·양·닭 등의 사육도 활발하다. 고랭지대이므로 내한성 산림이 거의 원시상태로 우거져 있어 목재산출과 제재업이 활발하며, 특산물로는 녹용·인삼이 있다.
도로는 신갈파-중평장-함흥을 잇는 2등도로가 면의 동부를 남북으로 지나며, 중평장∼혜산간의 3등도로가 있다. 유적으로는 중평장리에 삼수보가 있다. 삼수보는 본래 금수면 성내리에 있던 성인데, 일제강점기에 병화를 입자 현재의 위치로 이전한 것이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2개교가 있다.
중평장(仲坪場)·천평(川坪)·원덕장(院德場)·하석(下石)·유동(柳洞)·교암(轎巖)·중석(中石)·신풍(新豊)·신풍중(新豊中)·무학(務學)·중평상(仲坪上)·중평하(仲坪下)·회동(檜洞)·신흥(新興)·화산상(華山上)·화산중(華山中)·석우(石隅)·남회(南准)·남풍(南豊)·신창(新昌)·유평(楡坪)·북수(北水)·화계(花溪)·화양(華陽)·독산(獨山)·운봉(雲峰)·관동(館洞)·회산(檜山)·나산(羅山)·은포(隱浦)·동수(東水)·별흥(別興) 등 32개 이가 있다.
[신파면新坡面]
군의 북부에 있는 면. 면적 152.71㎢, 인구 9,697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신갈파리이다. 본래 갑산군 지역으로 1464년(세조 10)까지 신갈파진에 군아가 있었다. 1896년 삼수군이 설치되자 이 군에 속하게 되면서 강진면(江鎭面)이라 불렸고 1942년 신파면으로 개칭되었다.
동쪽 호인면과의 경계에 영성령(嶺城嶺, 1,151m)이 있고, 서쪽에 형천산이 있으며 남쪽 면계도 1,000m 이상의 산능선으로 되어 있다. 북쪽의 국경을 따라 압록강이 서류하고, 장진강이 면의 서부를 북류해 압록강에 합류하면서 유역에 평야와 계곡이 발달하였다.
밭농사가 활발해 감자·귀리·옥수수·조·콩·메밀 등의 잡곡이 생산되며, 특용작물로는 대마·인삼·더덕·녹용 등이 있다. 특히 농가부업으로 소·돼지·닭 등의 사육이 이루어지며 소가 특산물이다. 한편, 장진강 상류에서 벌채한 원목을 제재하는 제재업도 활발하다.
도로는 의주∼혜산선이 압록강 연안을 따라 동서로 지나며, 신갈파∼차천선이 서부를, 신갈파∼함수간의 도로가 동부를 각각 남북으로 통과한다. 유적으로는 신갈파리에 신갈파진보(新乫坡鎭堡), 구갈파리에 구갈파지보(舊乫坡知堡)가 있으며, 보리에 나난보, 소농리에 소농보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2개교, 간이학교 1개교가 있다.
신갈파(新乫坡)·지응(地應)·천대(川臺)·보파(寶坡)·보(堡)·이방(利方)·연덕(淵德)·두지(斗地)·소농(小農)·민탕(珉湯)·만항(晩項)·박주평(泊舟坪)·구갈파(舊乫坡)·토평(兎坪)·차항(遮項) 등 15개 이가 있다.
[자서면自西面]
군의 중서부에 있는 면. 면적 234.7㎢, 인구 8,510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상동구리이다. 본래 갑산군 지역이었으나 1896년 삼수군이 설치되면서 이 군에 속하게 되었다.
동쪽에 백산령, 남쪽에 일자봉과 두릉봉이 솟아 있으며, 서부와 북부에도 고산준령이 잇달아 있어 고원지대를 형성한다. 장진강이 면의 중앙을 북류하며, 남부를 서류하는 상거천 등의 지류가 장진강으로 흘러들면서 유역에 넓은 평지가 발달하였다. 따라서 밭농사가 활발해 주로 감자·귀리·조·콩·메밀 등의 잡곡을 생산하며, 소·돼지·닭 등의 사육과 양잠도 활발하다.
장진강 유역의 산지에서 원목의 채벌이 많으며 뗏목을 이용해 운반한다. 도로는 신갈파∼차천선이 면의 중앙을 남북으로 관통하며, 상리∼삼수를 잇는 도로가 면의 중앙을 동서로 지나 신갈파∼차천선과 상리에서 합해진다. 유적으로는 상동구리에 자작보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2개교, 간이학교 1개교가 있다.
상동구(上洞口)·상거(上巨)·차천(遮川)·을산덕(乙山德)·내목척(內木尺)·외목척(外木尺)·황철(黃鐵)·하동구(下洞口)·아안(阿安)·고영(高永)·용수(龍水)·서가(西佳)·광암(廣巖)·동동(東洞)·신풍(新豊)·신전(新田)·도룡덕(道龍德)·송전(松田)·부내(釜內)·화룡(化龍)·산암동(山巖洞)·태양(太陽)·석평(石坪)·석촌(石村)·수침(水砧)·차보(車堡)·사덕(沙德)·광암덕(廣巖德)·이만(李萬)·생양(生陽)·원동(院洞)·하원동(下院洞)·용천(龍川)·하거(下巨)·연화(蓮花)·태평(太平)·족교(足橋)·복수(福守)·백산(白山)·내평(內坪)·용교(龍橋) 등 41개 이가 있다.
[호인면好仁面]
군의 동북부에 있는 면. 면적 178.9㎢, 인구 7,052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보성리이다. 본래 갑산군 지역이었으나 1896년 삼수군이 설치되자 이 군에 속하게 되었다.
동부에 고련봉, 서부에 영성령이 있고, 중평천이 면의 중앙을 북류해 북부를 흐르는 압록강과 합류한다. 따라서 동서 면계는 험준한 산악지대이지만, 압록강과 중평천 및 혜산군의 허천강 유역에 완경사지가 발달하였다.
주요 농산물은 귀리·감자·보리·조·콩·메밀 등이며, 농가부업으로 소·돼지·닭 등의 가축을 사육하고 양잠도 활발하다. 도로는 의주∼혜산진간의 2등도로가 남부를 동서로 지나며, 소농리∼곤평리간, 영성∼보성리간의 3등도로가 나 있다.
유적으로는 보성리에 인차외보(仁遮外堡)가 있으며 운전리에 지금은 폐성이 된 길이 460m의 압록강행성(鴨綠江行城)이 있다. 인차외보는 조선시대에 국방상의 요새로서 둘레 약 120m, 높이 약 3m의 석축으로 축성되었다. 지금은 석벽과 병사문 등이 남아 있을 뿐 대부분이 파손되었다. 명승지로는 과전리에 중흥사(重興寺)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2개교, 간이학교 1개교가 있다.
보성(堡城)·상대복(上大福)·하대복(下大福)·춘방(春芳)·중평(仲坪)·관흥(館興)·재함(財咸)·조전(笊田)·재전(財田)·왕가(王哥)·국은(國恩)·최가(崔哥)·신덕(新德)·대암(大巖)·봉삼(峰三)·박씨대(朴氏垈)·농평상(農坪上)·농평하(農坪下)·효동(孝洞)·상병풍(上屛風)·하병풍(下屛風)·인산(仁山)·화전(樺田)·신성(新星)·고거(高巨)·장령(長嶺)·성암(城巖)·중위(中位)·직동(直洞)·한평(漢坪)·운곡(雲谷)·운전(雲田)·신흥(新興)·입암(立巖)·영성(嶺城)·삼형제(三兄弟)·신풍(新豊) 등 37개 이가 있다.
양강도 중부 압록강변에 있는 군. 동쪽은 혜산시와 갑산군, 서쪽은 김정숙군, 남쪽은 풍서군, 북쪽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 동북지방과 접해 있다. 동경 127°47′∼128°10′, 북위 41°05′∼41°27′에 위치한다. 면적 874㎢, 인구 3만 6000여 명(1996년 추정)이다.
1952년 신파면·자서면·삼서면·호인면의 일부가 분리되어 신파군이 신설되었으며, 삼수면·호인면·금수면·관흥면의 면 행정단위를 폐지하고 이 단위로 분할, 통폐합해 군 행정구역을 개편하였다.
1954년 10월 평장리의 일부가 원동리로, 원동리의 일부가 천남리로, 청수리의 일부가 관흥리로, 문천리의 일부가 반룡기리로 각각 편입되었다. 또 신파군 상대리의 일부가 삼수군으로 편입되고, 중운리가 분리되어 혜산군 춘동리에 속하게 되었다. 1954년 11월 양강도가 신설되면서 이에 속하게 되었다.
행정구역은 삼수읍과동수(東水)·반룡기(盤龍基)·중평장(仲坪場)·신양(新陽)·원동(院洞)·천남(川南)·관동(舘洞)·예흥·관흥(舘興)·관서(舘西)·청수(靑水)·간령(間嶺)·신포동(新浦洞)·일자봉(一字峰)·개운성(開雲城)·용복동(龍福洞)·삼곡(三谷)·영성(嶺城)·포성·신전(新田)·회골·관평(舘坪)·광생(光生)·번포(蕃浦) 등 24개 이로 되어 있다. 군 소재지는 삼수읍이다.
대부분의 지역이 산지와 개마고원 지대로 되어 있으며 남쪽에서 북쪽으로 가면서 낮아진다. 군 경계 및 내부에는 회색봉(1,699m)·관동산(1,979m)·청산령(1,791m)·백설봉(2,082m)·두룡봉(1,921m)·십자봉(1,593m) 등이 솟아 있으나 남부지역은 평탄한 고원벌을 이룬다. 하천은 압록강이 북부경계지대를 서북방향으로 흐르고, 지류인 삼수천과 허천강이 군의 중심부와 동부를 북쪽으로 흘러 압록강에 유입한다.
기반암은 화강편마암·화강암·현무암으로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고, 토양은 산악표백화갈색산림토와 산악표백성토가 분포되어 있으며, 압록강과 삼수천 유역에 약간의 충적토가 있어 벌을 이룬다.
기후는 내륙지대이므로 기온차가 심하며, 겨울이 길고 여름이 짧다. 연평균기온 2.1℃, 1월 평균기온 -18.5℃, 7월 평균기온 19.4℃이며, 연평균강수량은 600∼650㎜이다. 첫서리는 9월 10일경, 마감서리는 5월 18일경에 내린다.
산림은 군면적의 84%로서 이깔나무·분비나무·가문비나무·사스레나무·붓나무·황철나무·피나무 등이 자라며, 특히 돌배나무와 고사리가 많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농경지 중 논이 6.4%, 밭이 75%를 차지하며, 논은 압록강 및 삼수천 유역에 분포되어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과 옥수수이고, 그 중 옥수수는 양강도에서 제일 많이 생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밖에 밀·보리·감자·호프·아마·채소 등 고지대 작물을 경작하며, 각종 약초도 대규모로 재배한다.
가축은 양을 위주로 소·염소·돼지·닭 등을 사육한다. 북수백산맥 기슭의 중평·원동·천남리 일대에서는 대대적으로 꿀벌을 치며, 양잠도 이루어진다. 임업은 이 군의 주산업으로 삼수임산산사업소와 천남·관흥·증평작업소들이 배치되어 원목생산과 운반을 담당한다. 증평에서 관동까지 약 30㎞ 구간에 임시철도가 부설되어 있으며, 여기서부터는 삼수천을 이용해 뗏목으로 압록강까지 운반된다.
공업은 임업과 관련해 임업기계수리공장과 목재가공공장이 건설되어 있으며, 그 밖에 아마섬유·직물·목재일용품·식료품·토기·판지·철제일용품공장 등 소규모 지방공장들이 있다. 교통은 1988년 북부내륙선(혜산-자강도)이 개통되어 전기철도가 통과하고, 혜산-삼수-김정숙군 사이에는 압록강 연안도로가 나 있다.
유적으로는 1441년(세종 23) 삼수읍성을 축성할 때 세운 사대문 중 2층누각의 동문이 남아 있다. 관평리의 중흥사는 1570년(선조 3)에 창건한 고찰로 극락전·칠성각·산신각 등이 남아 있으며, 현재 불학원(佛學院)으로 이용된다. 교육기관으로는 삼수고등중학교와 각급학교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