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임시정부의 내무총장을 지낸 이동녕(李東寧)과 국무위원 이시영(李始榮)·신익희(申翼熙) 등 10여명이 1926년 5월 상하이 프랑스조계 서문로(西門路)에서 조직하였다. 독립운동의 자금은 자체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는 취지 아래 상무단을 구성하여, 중국인을 상대로 기업활동을 전개하였다.
중국인들이 필요로 하는 지물과 인쇄기 등을 수입하여 매매하는 등의 기업활동을 전개하였다. 여기서 수입된 수백원을 김구(金九)로 하여금 작탄(炸彈)의거를 일으키게 격려하였다. 1932년 윤봉길(尹奉吉)의 의거 후 상하이를 떠날 때까지 지속적으로 기업활동을 부대사업으로 전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