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서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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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제도
조선시대 국왕의 새보(璽寶) · 부신(符信) 등을 관장하였던 관서.
이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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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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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국왕의 새보(璽寶) · 부신(符信) 등을 관장하였던 관서.
내용

고려시대에는 상서사(尙瑞司)가 있었는데, 정방(政房)·지인방(知印房)·차자방(箚子房) 등으로 불렸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1392년(태조 1) 고려의 제도를 따라 상서사를 설치하였다.

부인(符印)과 제수(除授) 등의 일을 관장하였으며, 관직으로는 판사·부윤(府尹)·소윤(少尹)·승(丞)·주부·직장(直長)·녹사(錄事) 등을 두었다. 그 뒤 1466년(세조 12) 상서원으로 개칭되고, 관직도 윤을 정(正), 승(丞)을 판관(判官), 녹사(錄事)를 부직장(副直長)으로 고치고, 소윤(少尹)은 폐지되었다.

『경국대전』에 나타난 직제를 보면, 정 1인, 판관 1인, 직장 1인, 부직장 2인으로 구성되고, 정은 도승지가 겸하도록 규정되었다.『속대전』에서는 판관이 없어지고, 부직장도 1인으로 줄었다. 『경국대전』에 규정된 상서원의 직장(職掌)은 새보·부패(符牌)·절월(節鉞)을 관장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새보는 국왕의 도장으로서 외교문서·교명(敎命)·교서·교지·유서(諭書)·시권(試券) 및 홍패·백패 등에 찍었고, 절월은 생살권(生殺權)을 부여하는 뜻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관찰사 및 병사(兵使)·수사(水使)에게 내려주었다.

부패의 부는 병부(兵符)를 의미하고, 패는 순패(巡牌)·마패(馬牌)를 뜻하였다. 상서원은 1894년(고종 31) 갑오경장 때 폐지되었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태조실록(太祖實錄)』
『세조실록(世祖實錄)』
『성종실록(成宗實錄)』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중종실록(中宗實錄)』
『선조실록(宣祖實錄)』
『정조실록(正祖實錄)』
『고종실록(高宗實錄)』
『경국대전(經國大典)』
『대전회통(大典會通)』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육전조례(六典條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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