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상해의 프랑스 조계(租界) 안에서 일찍부터 독립운동에 종사한 바 있으며, 신한청년단과 임시정부를 조직, 수립함에 기여한 여운형(呂運亨)이 남형우(南亨祐)·조소앙(趙素昻) 등 20여명을 규합, 조직한 단체이다.
이를 조직한 최대의 목적은 한국인에게 노동의식을 제고함과 동시에, 근로정신을 통하여 광복운동을 보다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추진, 진행시키려 함에 있었다. 사무실은 상해의 프랑스 조계 타이구로(太古路) 506호 여운형의 임시숙소로 정하였다.
이 곳에 간단한 간판을 걸고 노동운동을 본격화시켜나갔다. 표면으로는 노동운동을 표방하였지만, 내실은 임시정부를 지원하면서 광복투쟁을 병행하여왔던 것이다. 이와 같은 취지에 찬동하는 동지가 늘어나 한때는 단원이 160여명에 달한 때도 있었다.
회장을 여운형이 맡고 단원을 증모하고 부서를 정하게 하였다. 그 뒤 여운형의 독립투쟁노선에 회의를 느끼는 자가 생겨 단원이 절반으로 줄고 활동도 큰 성과없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