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하대에 들어서면 근시기구(近侍機構)와 더불어 문한기구(文翰機構)가 확충되는데, 이때 새로운 문한기구로서 서서원이 기록에 나타난다. 그 전신은 경덕왕 때에 설치된 한림대(翰林臺)로서, 1세기 남짓 지난 880년경 서서원으로 개명되었으리라 추측된다.
서서원은 신라 하대 문한기구의 중추적 존재였으리라 여겨지지만, 『삼국사기』 직관지(職官志)에는 ‘서서랑(瑞書郎)’이라는 관직 이외는 전혀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다만, 금석문을 비롯한 다른 자료에는 서서원에 설치된 관직으로서 지서서감(知瑞書監)·서서학사(瑞書學士)·서서원학사(瑞書院學士)·서서원직학사(瑞書院直學士) 등의 이름이 보인다.
또한, 서서원에 관련된 인물로서 박옹(朴邕)·최치원(崔致遠)·박인범(朴仁範)·최언위(崔彦撝) 등의 이름도 전해지고 있다. 서서원은 그뒤 궁예(弓裔)의 태봉과 고려 초기는 원봉성(元鳳省)으로 계승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