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서주일(徐周一). 경상북도 청송 출신.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되자 영남지방에서 사림들을 중심으로 의병을 일으키자는 논의가 진행되던 중 고종의 시종관(侍從官)으로 있던 정환직(鄭煥直)이 그의 아들 정용기(鄭鏞基)에게 고향인 영천을 중심으로 하여 의병을 모으도록 하여 청송지방의 의거계획 진행의 책임을 맡고 소모활동(召募活動)을 전개하였다.
1906년 3월 각 고을에 포수와 민병(民兵)으로 산남의진(山南義陣)을 조직하고 정용기를 의병대장으로 추대하고 서종락은 후봉장(後鋒將)이 되어, 1907년까지 청송을 비롯한 각 지방에서 일본군과 여러 차례에 걸쳐 격전을 치렀다.
1908년에는 이강년(李康秊) 휘하에서 우군장(右軍將) 변학기(邊鶴基)·이구옥(李舊玉) 등과 의성·안동·포항 등지에서 여러 차례 일본군과 격전을 벌여 많은 공을 세웠다.
1980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