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경양(景襄). 호는 임재(臨齋). 아버지는 서홍렬(徐洪烈)이며, 어머니는 흥해배씨(興海裵氏)로 배응수(裵應綉)의 딸이다. 홍직필(洪直弼)의 문인이다.
1846년(헌종 12) 생원시에 합격, 도천(道薦)에 다섯 번 오르고 암행어사의 추천도 받았으며, 1883년(고종 20)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에 제수되었으나 모두 나아가지 않았다. 서찬규는 수동재(守東齋)를 지어놓고 후진 교육에 심혈을 경주하였다.
조병덕(趙秉德)·최익현(崔益鉉)을 종유하면서 경전에 대한 질의와 한말의 사회·정치적 사변으로 인한 문제를 토론하기도 하였다.
일본의 잦은 침략에 대한 대비책으로 경상도 일원의 요새지에 성을 수축할 것을 제의하였으며, 이기설(理氣說)에 있어서는 이(理)는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고, 기(氣) 속에 존재하여 기의 주(主)가 된다고 전제,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을 지지하였다. 저서로는 『임재집(臨齋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