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권 2책. 석인본. 1971년 후손 영호(英鎬)가 편집, 간행하였다. 권두에 송재성(宋在晟)과 성구용(成九鏞)의 서문이 있고, 권말에 후손 만헌(萬憲)의 발문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다.
권1·2에 시 4수, 소(疏) 3편, 행장 1편, 권3·4는 부록으로 가장·행장 각 1편, 묘갈명·추안(推案)·추국당상(推鞠堂上)·별문사낭청(別問事郎廳)·청복관명정건사소(請復官命旌建祠疏)·청가증소(請加贈疏)·정절사배향고유문(靖節祠配享告由文)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소의 「진봉사소(進封事疏)」와 「봉사(封事)」는 저자의 스승인 송시열(宋時烈)이 멀리 귀양갔을 때 그 벌이 억울하다고 풀어줄 것을 청하고, 송시열이 위리안치된 사유가 예설 때문이므로 당시 예론의 주장자인 윤휴(尹鑴)·허적(許積)·윤선도(尹善道)의 의견에 반대하는 자기 의견을 주달한 것으로, 수천 언에 달하는 장문이다.
이밖에도 부록에는 저자가 송시열의 일당으로 연루되어 추국을 받을 때의 기록들이 많고, 「청복관명정건사소」 등에는 뒤에 그의 억울한 죽음에 대하여 정려를 세워 기려줄 것을 건의, 진정한 내용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