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이 곳은 본래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 서학당동이었던 것이 서울특별시로 편입되면서부터 현재의 소재지 명칭으로 변경이 되었다.
이곳이 능지(陵址)로 선정된 것은 1495년(연산군 1)에 성종의 능인 선릉(宣陵)이 들어앉으면서부터였다. 그 뒤 1530년(중종 25)성종의 제2계비인 정현왕후(貞顯王后) 윤씨가 죽자 이 능에 안장하고 동원이강형식(同原異岡形式)으로 조영하였다.
다음 정릉(靖陵)은 중종의 능으로 1544년에 중종이 죽자 경기도 고양시 원당동에 소재한 제1계비 장경왕후(章敬王后) 윤씨의 능인 희릉(禧陵)과 동원이강으로 하였으나, 1562년(명종 17)문정왕후(文定王后) 윤씨가 풍수지리적으로 ‘수파지불길(水破之不吉)’을 내세워 봉은사(奉恩寺)의 주지 보우(普雨)와 논의하여 삼성동 지금의 위치로 능을 옮겼다.
옛 정릉(靖陵)의 터에서 재궁(梓宮 : 임금의 관)을 옮기면서 지대가 낮은 이 곳에 거액을 들여 흙을 쌓아 지대를 높였으나 매년 여름이면 강물이 능의 앞까지 들어오고 재실(齋室)의 절반이 침수되는 상태여서 다시 능을 옮기자는 논의까지 있게 되었다.
문정왕후는 중종과 함께 안장되도록 하기 위하여 힘들여 공사를 하였으나 문정왕후가 승하한 뒤에 이 곳이 침수되자 현재의 태릉(泰陵)에 결국 단릉(單陵)으로 치장(治葬)하게 되어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왜병에 의하여 선정릉이 침해를 당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