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승려였던 상봉 정원이 중국 당나라 규봉 종밀(780~ 841)의 『선원제전집도서』를 분과(分科)하고 주석한 것이다. 『선원제전집도서』의 과문으로서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간행된 문헌이다.
1701년에 쓴 풍계 명찰(楓溪明察)의 서문에 의하면, 종래 전해지던 『선원제전집도서』에 잘못이 많아 정원이 먼저 잘못된 부분을 삭제하고 번잡한 것을 정리한 후 과(科)를 나누었다고 한다. 권말에 실린 정원의 당본대교후발(唐本對校後跋)에 의하면, 종밀이 『선원제전집도서』를 저술한 후 여러 번 필사되는 과정에서 착오가 많이 발생하여 많은 학자들이 당본(唐本)을 구해서 대교하고자 하였는데, 최근에 와서 우연히 그것을 얻어 교정하고 분과한다고 말하고 있다.
2권 1책. 1701년에 경상도 문경 희양산 봉암사(鳳巖寺)에서 간행되었다. 『한국불교전서』 제8책에 수록되어 있다.
정원의 문제자 풍계 명찰(楓溪明察)의 서문이, 책 말미에는 정원(淨源) 자신과 예조판서 서강(西江)의 발문이 실려 있다.『선원제전집도서분과(禪源諸詮集都序分科)』라고도 부른다. 『선원제전집도서』란 중국 당나라의 규봉 종밀이 선적(禪籍) 100권을 수집한 후 그에 대해 서문을 쓴 것이라 전해지고 있다. 『선원제전집도서』는 우리나라에 전해진 뒤 큰 영향을 미쳤는데, 특히 17세기경에 조계종 강원 사집과(四集科)의 교재로서 채택된 이후 빈번하게 간행되었다. 또한 주석서도 많이 쓰였는데, 『선원제전집도서과문(禪源諸詮集都序科文)』을 비롯하여 회암 정혜(晦庵定慧, 1685∼1741)의 『선원집도서과기(禪源集都序科記)』, 연담 유일(蓮潭有一, 1720∼1799)의 『도서과목병입사기(都序科目幷入私記)』 등이 있다.
상하 2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은 정원이 그동안 전해져 온 『선원제전집도서』의 흐트러지고 잘못 기록된 부분을 바로잡고, 그 내용을 분석하여 과목(科目)과 간주(間注)를 붙이고 있다. 각 과목을 총표(總標)·별석(別釋)·결론(結論) 등 세 부분으로 나누고, 이를 근간으로 다시 세분하여 해석하는 방식으로 문장을 분석하고 체계화하였다.
하지만 주석의 양은 많지 않고 매우 소략한 편이다. 그래서 연담 유일은 『도서과목병입사기』 「서요사기서(序要私記序)」에서 “서요[필자주: 서(序)란 『선원제전집도서』를 가리키고, 요(要)는 『절요』 즉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를 가리킨다.]는 옛날에는 사기(私記)가 없었는데, 근래에 상봉노인이 그것을 썼으나 대단히 소략하여 부족함이 많았다. 그 후 설암·회암 두 선사가 그것을 계승하여 주석을 썼는데 비로소 정밀함을 얻었다.(序要舊無私記 近古霜峰老人 剏爲之 頗踈略 未能盡善 嗣後雪岩晦庵兩大老 繼而因修 始得詳悉.)”라고 말하고 있다.
『선원제전집도서과문』은 『선원제전집도서』에 대한 우리나라 최초의 과문으로서, 17∼18세기 조선시대 과문의 전통을 잇고 있다. 또 당본(唐本)을 직접 대교(對校)한 특징이 있지만 주석이 소략하여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