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건 연대는 미상이며,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담당하였다.
원래 남면(南面) 옛 난지동 서쪽에 있었는데, 1694년(숙종 20)에 부읍(府邑)을 임반역(林畔驛)으로 옮기면서 부사가 수군방어사를 겸직하게 되어 이 때 향교도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1696년에 부사 이운식(李運植)이 3칸이던 대성전을 5칸으로 증축하였고, 그 밖에 각 2칸의 동무(東廡)와 서무(西廡), 3칸의 명륜당, 각 6칸의 동재(東齋)와 서재(西齋), 5칸의 남루(南樓), 4칸의 서상방(西上房), 3칸의 반채고(飯菜庫), 남문(南門)·서협문(西夾門) 등이 있었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10철(十哲), 송조6현(宋朝六賢),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다.
조선 후기 이래 향교는 교육 기능이 쇠퇴하고 대신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였다. 봄·가을에 석전을 봉행하며 초하루·보름에 분향을 하여 왔다. 광복 이후의 사항은 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