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과 자·호 미상이다. 이자백(李子栢)의 스승으로서, 30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충청도와 경기도 등 기호지방과 영남북부지방에는 그에 관한 많은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상좌 이자백을 데리고 전국의 산천을 누비면서 산세에 따라 명당을 점혈하고 형국에 따라 명칭을 붙였으며, 어떤 곳에서는 춤을 추기도 하고 절을 하거나 통곡을 하기도 하면서 그 명당으로 인해 맺어질 세상의 인연과 일족의 번영, 일신의 길흉을 행동으로 표현하였다.
보통사람들은 그를 광사(狂士)로 취급하였지만, 간혹 그를 알아 보는 사람이 있어 특별한 대접을 받으면 그 대가로 명당을 점지해주기도 하였다. 그의 명성은 생존시에는 대단하지 않았으나 제자인 이자백이 명풍(名風)으로 알려지자 빛을 보게 되었다.
지금도 풍수지리서인 『만산도(萬山圖)』에는 그가 점지한 충주의 운련초월(雲連初月)·생사함와(生蛇含蛙)를 비롯하여 금구예미(金龜曳尾)·구룡농주(九龍弄珠) 등의 명당이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