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성사(聖思), 호는 과재(果齋). 성혼(成渾)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부여현감·금구현령 성정주(成鼎柱)이다.
1809년(순조 9)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였다. 1838년(헌종 4)에 양근군수 재임시에 이조로부터 재학(才學)이 뛰어난 인물로 추천을 받아 경연관(經筵官)을 거쳐 1805년에 사헌부장령으로 발탁되었고 1807년에 사헌부집의로 승진하였다.
1852년(철종 3)에 형조참의로 임명되었는데, 그 해에 죽었다. 청렴·강직하기로 이름을 떨쳤으며 학문이 빼어났다. 죽은 뒤에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저서로는 『과재집(果齋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