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지 ()

기자지
기자지
조선시대사
문헌
조선시대 문신 윤두수가 기자에 관한 기록을 모아 1580년에 편찬한 자료집.
정의
조선시대 문신 윤두수가 기자에 관한 기록을 모아 1580년에 편찬한 자료집.
서지적 사항

5권 1책. 목판본.

편찬/발간 경위

윤두수가 1577년에 명나라에 사은사로 갔을 때 명나라의 사인(士人)들로부터 기자에 대해 많은 질문을 받았으나, 충분한 답변을 하지 못하고 돌아온 것이 편찬의 계기가 되었다.

개설

중국과 우리 나라의 경서 · 사서 · 시가 · 비문 등에서 기자에 관한 사실(史實)과 논평들을 모아놓은 자료집이다. 『논어』 · 『서경』 등의 경서류와 『사기』 · 『고려사』 등의 사서류를 포함해 『악지(樂志)』 · 『요동지(遼東志)』 · 『풍속통의(風俗通義)』 등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자료가 인용되어 있다.

내용

권수(卷首)에는 기자상(箕子像) 및 찬(贊)에 이어 치조선도(治朝鮮圖) · 진홍범도(陳洪範圖) · 정전도(井田圖) · 사당도(祠堂圖) 등 10개의 그림이 실려 있다. 수집된 자료들은 전(傳) · 녹(錄) · 논 · 기 · 찬(贊) · 부 · 사(辭) · 조(操) · 가(歌) · 시 등으로 분류해 제1권에는 전부터 논까지, 제2권에는 기부터 가까지, 제3권에는 시를 수록하였다.

전과 녹에서는 『사기』 · 『서경』 · 『예기』 · 『송사(宋史)』 등에서 기자에 관한 사실을 뽑아 수록하였다. 특히 녹에서는 고려시대 1102년(숙종 7)의 기자묘(箕子廟)의 설치에서 조선시대 1571년(선조 4)의 기자 하마비(下馬碑)를 설치하기까지, 우리 나라의 기자에 대한 입사(立祠) · 치제(致祭)의 기록을 담고 있다.

논은 공자 · 정자 · 주자 등의 논평을 모은 ‘성현론’과, 한비자(韓非子) · 사마천(司馬遷) · 이백(李白) · 김시습(金時習) 등의 논평을 모은 ‘제자론(諸子論)’으로 분류되어 있다. 기에서는 유종원(柳宗元) · 변계량(卞季良) 등이 지은 비문을 수록했으며, 찬 · 부 · 사 · 조 · 가 · 시에서는 도연명(陶淵明) · 동월(董越) · 권근(權近) · 서거정(徐居正) · 이이(李珥) · 김시습 등이 지은 시가를 수록하였다.

이 책은 16세기의 사림이 대거 중앙정계에 진출하고 성리학이 심화되는, 사상계 및 정치계의 전반적인 변화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즉 기자가 단순히 후조선의 시조요, 중화문화의 전수자였다는 점에 역점을 두기보다는, 기자가 도학정치의 핵심인 왕도와 명분 및 절의의 실제적인 구현자로서 떠받들여지고 있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이는 『기자지』가 잡다한 자료를 일정한 체계가 없이 늘어놓아 기자에 대한 통기(統記)를 살필 수 없다 하면서, 『기자지』가 편찬된 해 다음에 바로 이를 정리한 『기자실기(箕子實記)』를 내놓았다.

윤두수는 평안도관찰사로 있던 1590년에 『평양지』를 편찬하면서 『기자지』를 증보하였다. 광해군 때에는 윤두수의 『기자지』와 이이의 『기자실기』를 함께 수록하고 부록 2권을 합편해 5권으로 간행하였다. 규장각도서에 있다.

참고문헌

『오음집(梧陰集)』
『조선전기사회사상연구』(한영우, 을유문화사, 1983)
「기자조선에 대한 인식의 변천」(박광용, 『한국사론』 6, 서울대학교, 1980)
관련 미디어 (4)
집필자
박광용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