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계연(季淵). 성광석(成光錫)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성덕유(成德游)이고, 아버지는 성노주(成老柱)이며, 어머니는 최창걸(崔昌傑)의 딸이다.
1829년(순조 29)에 왕세자가 친림한 감시(柑試)에서 장원으로 급제하여 전시(殿試)에 바로 시험을 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1831년의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모사도감(模寫都監)의 도청(都廳)을 지냈다. 1846년(헌종 12)에 대사간에 임명되었다.
이듬해에 대사성을 거쳐 1849년(철종 즉위년)에 대사헌에 임명되었다. 1851년에 동지사(冬至使)의 부사(副使)로서 연경(燕京)에 다녀왔다. 그 뒤 공조판서·의정부우참찬·한성부판윤 등을 거쳐 1856년에는 예조판서에 임명되었다. 시호는 효정(孝靖)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