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9년(공민왕 18) 8월에 총부상서(摠部尙書)였던 성준득은 사신으로 북경(北京)에 가서 명나라의 성절(聖節)을 하례하고 다음 해 5월에 돌아왔다. 이 때 성준득은 명나라 황제로부터 고려왕에게 보내는 관복(冠服)과 악기(樂器), 배신(陪臣)의 관복, 홍무(洪武) 3년 대통력(大統曆), 그리고 육경(六經)·사서(四書)·『통감(通鑑)』·『한서(漢書)』를 받아가지고 왔다. 악기로는 편종(編鍾) 16가(架) 전부, 편경(編磬) 16가 전부, 종가(鍾架)·경가(磬架) 전부, 생(笙)·소(簫)·금(琴)·슬(瑟)·배소(排簫) 하나씩이었다.
충혜왕(忠惠王)의 일녀로 원나라 노왕(魯王)에게 시집갔던 장녕공주(長寧公主)가 원나라가 망하고 명나라가 일어나는 난리 속에서 행방불명이 되었던 것을 성준득이 명태조(明太祖)에게 주청하여 환관(宦官)을 시켜서 찾게 하여 같이 돌아온 것도 이 때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