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권 3책. 목판본. 1880년(고종 17) 증손 재소(在韶)가 편집, 간행하였다. 권두에 김흥락(金興洛)의 서문과 권말에 재소의 발문이 있다. 영남대학교 도서관과 권기흥가(權奇興家)에 소장되어 있다.
권1∼3은 시 237수, 소(疏) 3편, 서(書) 42편, 기(記) 16편, 서(序) 12편, 발(跋) 8편, 명(銘) 2편, 권4·5는 상량문 3편, 잡저 15편, 묘지명 5편, 묘갈명 13편, 제문 8편, 뇌사(誄辭) 3편, 행장 3편, 권6은 부록으로 유사·가장(家狀)·행장 각 1편, 제문 8편, 만사 21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소의 「척사소(斥邪疏)」는 1791년(정조 15)에 성균관생(成均館生)을 대리하여 지은 것과 1800년에 영남유생을 대표하여 올린 것으로 모두 당시 암암리에 포교되고 있는 서학(西學)을 맹렬히 비난, 탄압하여 엄단할 것을 주장한 것이다.
잡저 가운데 「오례보정(五禮補正)」은 우리나라의 예법은 국초에 『대명례(大明禮)』와 주자(朱子)의 『가례(家禮)』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이나 그 뒤 세월이 오래 지나고 시속도 많이 변하여 시행상에 어려움이 많다고 지적하고, 시대의 변천과 국민의 생활에 부합되도록 『가례』의 대강(大綱) 아래 보정하였다.
「교자설(敎子說)」은 무엇보다도 시급한 것이 국민교육인데 국민이 무식하고는 그 나라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어떤 방법으로든지 자식의 교육을 철저히 시켜 인간의 도리를 다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주장한 글이다.
이밖에도 태백산을 유람하고 그 아름다운 경치를 묘사한 「유태백기(遊太白記)」와 봉산서당(鳳山書堂)에서 『대학』을 강론한 사실을 기술한 「봉산서당강설(鳳山書堂講說)」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