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광국지경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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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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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청나라의 역사책에 조선의 왕통이 잘못 기록된 것을 바로잡은 뒤 그일에 관계된 여러 글들을 모아 편찬한 역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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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후기 청나라의 역사책에 조선의 왕통이 잘못 기록된 것을 바로잡은 뒤 그일에 관계된 여러 글들을 모아 편찬한 역사서.
내용

1책. 목판본. 1771년(영조 47)에 간행되었으며, 정확한 편집자는 나타나 있지 않다. 명나라의 『태조실록(太祖實錄)』과 『대명회전(大明會典)』에 조선의 태조가 고려의 권신 이인임(李仁任)의 아들이라고 잘못 기록된 적이 있었다.

이에 조선에서 여러 차례 명나라에 변무사(辨誣使)를 보내 정정을 요구한 끝에 마침내 1584년(선조 17)에 바로잡은 바 있었다. 이 때의 시와 전교(傳敎) 등 관계 기록을 모아 간행한 책이 『광국지경록(光國志慶錄)』이다.

그 뒤 1771년에 주린(朱璘)이 지은 『통기집략(通紀輯略)』에 변무하기 이전의 잘못된 종계(宗系)가 그대로 실려 있음을 박필순(朴弼淳)의 상소로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 책의 국내 유입본을 없애고 반입을 금지하였다.

또한 청나라에 우의정 김상철(金尙喆) 등을 사신으로 보내 이를 바로잡아 줄 것을 요구한 끝에 결국 청의 허락을 받았으며, 영조는 이 사실을 종묘에 고하였다.

이 책은 당시의 전말과 그것에 대한 영조의 어제시(御製詩)를 비롯한 여러 가지 글을 모아 편찬한 것이다. 내용은 「어제명병서(御製銘並序)」·「어제묘사고유문(御製廟祠告由文)」·「어제고묘후반사문(御製告廟後頒赦文)」·「어제어필(御製御筆)」·「왕세손화진친서(王世孫和進親書)」·「제신갱진(諸臣賡進)」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제명병서」에는 이 책을 만들게 된 경위가 밝혀져 있다. 「제신갱진」에는 영조가 이 일을 기뻐하며 지은 시와 그에 대해 시원임봉조하(時原任奉朝賀), 삼사신(三使臣), 서울에 거주하는 2품 이상의 관리, 도위(都尉)·부위(副尉)·관찰사·양도유수(兩都留守), 승정원·홍문관·시강원 등의 신하들이 지어 올린 시 121수가 갱진자의 관직명과 함께 실려 있다. 국립중앙도서관과 규장각도서·장서각도서에 있다.

참고문헌

『광국지경록(光國志慶錄)』
『영조실록(英祖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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