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일직(一直). 자는 측천(則天). 아버지는 지중추부사 손필억(孫必億)이다.
1697년(숙종 23)에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을 거쳐 진도군수를 역임하였으며, 여산부사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1727년에 운봉의 영장(營將)으로 부임하였는데, 이듬해 3월에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났다. 이 때 안음(安陰)에서 기병한 이인좌의 일당 정희량(鄭希亮)이 거창을 함락시키고 함양을 거쳐 전라도 지역으로 진군하려 하였다.
그러자 관찰사·병마절도사에게 미처 알리지도 않고 급히 인근 속읍의 군사들을 모아 운봉천총(雲峰千摠) 정후교(鄭後僑)와 함께 전라도의 관문인 팔량치(八良峙)를 지켜 반군의 진로를 차단하였다.
이에 정희량의 반군은 전라도로 들어가지 못하고 하루 만에 다시 거창으로 돌아가게 되었고, 이들은 선산부사 박필건(朴弼健)과 성주목사 이보혁(李菩赫)에 의해 토벌되었다.
이 때의 공로로 경상좌도수군절도사에 제수되었으며, 훈련도감별장·선천방어사 등을 거쳐 1733년에 제주목사로 임명되었으나 부임 도중 강진에서 병으로 죽었다. 그 뒤 1763년에 2품직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