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암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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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문헌
조선 후기의 문신 · 학자, 조근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749년에 간행한 시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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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 · 학자, 조근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749년에 간행한 시문집.
편찬/발간 경위

1749년(영조 25) 조근의 조카 조영석(趙榮祏)이 편집·간행하였다. 권두에 이의현(李宜顯)의 서문, 권말에 조영석의 발문이 있다.

서지적 사항

8권 4책. 목판본. 규장각 도서와 장서각 도서 등에 있다.

내용

권1·2에 소차(疏箚) 23편, 계(啓) 4편, 권3에 서독(書牘) 35편, 권4에 서(序) 4편, 기(記) 11편, 찬(贊) 1편, 발(跋) 1편, 권5∼8에 행장·묘지명·제문·축문 등 14편, 잡저 11편, 잡록 3편, 시 108수, 연보 1편, 부록으로 연보와 유사, 만장 18수 등이 수록되어 있다.

상소문은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송시열(宋時烈)과 송준길(宋浚吉)을 신변(伸辯)한 소, 제주도에 청나라 사람이 표류했을 적에 송환을 만류하는 소, 현종 때 복제(服制)에 관하여 의견을 밝힌 소, 그리고 영남 지방의 폐막(弊瘼)을 논하고 그 대책을 세워 달라는 「사정언겸진영남폐막소(辭正言兼陳嶺南弊瘼疏)」등이 있다.

서독은 스승 송시열에게 올린 것이 대부분이고, 이유태(李惟泰)·박세채(朴世采)·김석주(金錫胄) 등에게 올린 것도 있다. 송시열에게 올린 것은 예설(禮說)·성리(性理)·시사(時事)에 관한 것이고 그 밖의 것은 송시열을 옹호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답가제서(答家弟書)」는 제례에 관해 의견을 밝힌 것으로 기제(忌祭)·묘제(墓祭)·다례(茶禮)·시제(時祭) 등으로 구분하고, 진설(陳設)·제수(祭需)에 대해 조목별로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서(序)에는 금송(禁松)·회음(會飮)·계첩(契帖)에 관한 것이 들어 있고, 기(記)에는 적벽강을 돌아보고 쓴 「유적벽기(遊赤壁記)」, 도산서원을 돌아보고 일기체로 쓴 「심도산서원일기(尋陶山書院日記)」등이 있다.

잡저에는 평안도 강서현의 신포(身布) 징수를 개선해야 한다는 「논강서군정(論江西軍政)」, 북쪽 방비를 위해 황룡산성을 수축해야 한다는 「황룡산성수축이해(黃龍山城修築利害)」, 강서현의 관혼상제의 요목을 적은 「논강서민인문(論江西民人文)」 등이 있다.

그밖에 잡록에는 송시열·윤휴(尹鑴)·허목(許穆) 등에 얽힌 이야기, 여러 유사와 일화를 적은 「풍계쇄언(楓溪瑣言)」과 여러 묘도(墓道) 비탑(碑塔)에 관해 기록한 「풍계만록(楓溪漫錄)」 등이 있다. 끝에 수록된 저자의 시작들은 저자의 교우 관계를 알려 줄 뿐 특별한 시풍은 찾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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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권오호(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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