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경집(景楫). 호는 뇌고(雷皐). 경주 양좌리(慶州良佐里)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승사랑(承仕郞) 손집(孫鏶), 어머니는 달성서씨(達城徐氏)로 선교랑(宣敎郞) 서강인(徐强仁)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재예가 출중하여 20세에 향시에 합격하고 전시(殿試)에 응했으나 선비들이 분경(奔競: 엽관운동)하는 모습을 보고 과거를 포기하고 위기(爲己)의 학문에 심혈을 기울이고 후진 양성에 힘썼다. 『소학』은 사람을 만드는 길이며, 『대학』은 덕으로 들어가는 문이므로 반드시 두 과정을 거쳐야만 학문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교육의 자료로 많은 저서를 남겼는데 당시 교육제도와 교육방침을 연구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1732년(영조 8) 문묘(文廟)의 제례(祭禮)가 개원례(開元禮)의 잔재로 근거가 없다고 지적하고, 『주자가례』에 의해 고칠 것을 상소한 일이 있다. 문집으로는 『뇌고집(雷皐集)』 2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