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여산(礪山). 호는 돈학(遯壑). 아버지는 군수 송치선(宋治善)이며, 어머니는 연일정씨(延日鄭氏)이다. 김종직(金宗直)·남효온(南孝溫) 등과 교유하였다.
1455년 음보로 전라도사에 임명되었다. 1457년(세조 3) 단종이 영월에 유폐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재종형 송간(宋侃)과 함께 영월로 달려가 문밖에서 복명하고 돌아왔으며, 단종이 사사되자 송간과 함께 계룡산(鷄龍山)으로 들어가 2년간 복상하였다. 그 뒤 출세를 단념하고 임실(任實) 백이산(伯夷山)에 은거하여 그곳에서 일생을 마쳤다.
당시 그 곳에 숨어 충절을 지켰던 이인로(李仁老)·조응(趙膺) 등과 함께 임실생육신(任實生六臣)이라 불린다. 1788년(정조 12) 신안서원(新安書院)에 제향되었고, 이어 숙모전(肅慕殿)에 추배(追配)되었다.
저서로는 『돈학집(遯壑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