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관섭 ()

일제 주요감시대상 인물카드 송관섭 전후면
일제 주요감시대상 인물카드 송관섭 전후면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때, 연통제 경성군 지부를 조직하여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신간회 함경북도 지부를 조직하여 민족유일당운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83년(고종 20)
사망 연도
1930년
출생지
함경북도 경성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일제강점기 때, 연통제 경성군 지부를 조직하여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신간회 함경북도 지부를 조직하여 민족유일당운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생애 및 활동사항

함경북도 경성 출신.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3월 중순경 향리에서 장날을 이용하여 주민 200여 명을 이끌고 독립만세시위운동을 전개하다가 경찰에 잡혔으나 얼마 뒤 훈방되었다.

이어 1919년 7월 초순 송윤섭(宋玧燮)의 집에서 동지 이상호(李相鎬) 등 8명이 비밀리에 회합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국내 연통제(聯通制)의 조직에 적극 호응, 가담하기로 결의하고, 연통제 경성군(鏡城郡) 지부조직을 완료하였다.

송관섭은 동지들의 권유로 재무를 담당, 우선 군자금모집에 적극 활동하여 군내의 유지와 부호들이 독립성금으로 갹출한 수백원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조직을 통하여 송달하였다.

그뒤 이 운동을 더욱 대규모적으로 확산, 보급시키기 위하여 서울과 연락하는 등 활약하다가 1920년 3월초 경성군 자택에서 미행하던 일본경찰에 잡혀 1920년 8월 10일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1927년 2월 서울에서 신간회(新幹會)가 조직되자 중앙본부와 연락하여 함경북도지부를 조직하고 그 회장에 취임, 좌우합작적인 민족유일당운동을 전개하였다. 함북지부내의 군단위 조직을 위하여 활약하다가 3년여에 걸친 옥고의 후유증으로 죽었다.

상훈과 추모

1977년에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임정과 이동녕연구』(이현희, 일주각, 1989)
『대한민국임시정부사』(이현희, 집문당, 1982)
『朝鮮民族運動年鑑』(在上海日本總領事館 編, 東文社書店, 1946)
관련 미디어 (1)
집필자
이현희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