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순원(舜元), 호는 상강(尙岡). 아버지는 송동락(宋東洛)이며, 어머니는 여흥민씨(驪興閔氏)로 민수(閔銖)의 딸이다. 처음에 허전(許傳)의 문하에서 수학하다가 뒤에 이진상(李震相)의 문인이 되었다.
선비들이 분경(奔競)을 일삼는 것을 보고 크게 실망하여 과거를 포기, 위기학(爲己學)에 전념하였다. 후진 양성에 관심을 기울여 일찍부터 이택당(麗澤堂)·신천사숙(新川私塾) 등의 서당을 열고 후진들을 교육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1894년(고종 31) 동학란이 일어나자 안동에서 의병을 일으켜 곽종석(郭鍾錫)의 종사관(從事官)으로 금산까지 진군하였으나 난이 이미 평정되어 해산하였다. 송민용은 성리학을 비롯하여 경학(經學)과 예학(禮學)에 조예가 깊었다.
스승 이진상의 영향을 받아 이주기자(理主氣資)의 주리적(主理的)인 견해를 취하였으며, 한편 왕수인(王守仁)의 심체무선악설(心體無善惡說)을 강력히 배격하였다. 스승들의 유문을 모아 『성재문집(誠齋文集)』·『한주문집(寒洲文集)』의 간행에 힘썼다. 저서로는 『상강문집(尙岡文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