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은진(恩津). 초명은 송상준(宋祥濬). 자는 원발(元發), 호는 과치(果癡). 송취규(宋聚奎)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송광필(宋匡弼)이고, 아버지는 송영(宋鍈)이며, 어머니는 이한계(李漢誡)의 딸이다.
1784년(정조 8)에 진사로서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홍문관부수찬(弘文館副修撰)에 임명되었다. 1788년에 다른 홍문관 관원들과 함께 연명으로 차(箚子)를 올려 역적 이노춘(李魯春)을 두둔한 영의정 김치인(金致仁)을 삭탈관작하여 문외출송(門外黜送)시키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지나친 처사라 하여 이백형(李百亨)·조진택(趙鎭宅)·오태현(吳泰賢)·김이익(金履翼)·김희채(金熙采) 등과 함께 유배당하여 홍원으로 쫓겨났다. 이듬해에 풀려나 부교리에 임명되었고, 뒤에 초산부사로 부임하였다가 다시 파직되었다.
1801년(순조 1)에 승지에 임명되었다가 몇 차례 대사간을 역임하였으며 1809년에 예방승지로서 가선대부(嘉善大夫)에 가자(加資)되었다. 그 뒤 여러 차례에 걸쳐 대사간을 지냈으며 참판까지 이르렀다.
저서로는 『과치집(果癡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