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선지(善之), 호는 도봉(道峯) 또는 도은(道隱). 아버지는 증이조참의 송성준(宋星駿)이며, 어머니는 고성남씨(固城南氏)로 남두채(南斗彩)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병석에 있는 부모를 정성을 다하여 간호하였으며, 상을 당하자 극진한 효심으로 예를 다하여 3년상을 치렀다. 한편, 경사(經史)와 제자백가의 서적을 두루 섭렵하였으며, 자제들을 교육할 때는 효도를 모든 행실의 근본으로 삼았다.
1838년(헌종 4) 서양인 사교(司敎) 범세형(范世亨)이 서울에 와서 포교를 한다는 말을 듣고 서학은 사교이므로 우리나라에 발을 딛게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여 배척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요로에 편지를 보내어 금지시킬 것을 촉구하였다. 만년에는 오도산(吾道山) 근처에 초옥을 짓고 교육을 통한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다.
1843년 송내희(宋來熙)·홍직필(洪直弼) 등이 그의 효행을 조정에 보고하여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증직되었다. 저서로는 『도봉유고(道峰遺稿)』 2권 1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