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운대사 분충서난록 책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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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운대사 구 충서난록 책판
송운대사 구 충서난록 책판
출판
유물
문화재
임진왜란 때 승병장인 사명대사(四溟大師) 유정(惟政)의 활동사항을 기록한 실기 책판.
정의
임진왜란 때 승병장인 사명대사(四溟大師) 유정(惟政)의 활동사항을 기록한 실기 책판.
개설

1990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분충서난록』은 임진왜란 전쟁문학을 다룬 승려의 대표적 저작으로, 판목은 모두 47매이다. 사명대사의 5대 법손인 남붕(南鵬)의 주선으로 1738년(영조 14) 신유한(申維翰)이 편집하여 다음해 밀양 표충사에서 간행하였다. 김중례(金仲禮)의 서문과 송인명(宋寅明) · 윤봉조(尹鳳朝)의 구발(舊跋), 신유한(申維翰)의 신간발(新刊跋)이 붙어 있고, ‘上之十五年己未七月 密州 靈鷲山表忠寺 開刊(상지15년(1739)기미7월 밀주 영취산표충사 개간)’이란 간기(刊記)가 있다.

내용

사명대사의 속명은 임응규(任應奎). 자는 이환(離幻), 호는 사명당(四溟堂) 또는 송운(松雲), 별호는 종봉(鍾峯)이다. 1559년에 김천 직지사(直指寺)로 출가하였다. 1593년 평양성 탈환의 혈전에 참가하여 혁혁한 전공을 세웠고, 선조는 그의 전공을 포장하여 선교양종판사(禪敎兩宗判事)를 제수하였다. 그 뒤 전후 네 차례에 걸쳐 적진에 들어가서 가토[加藤淸正]와 회담을 가졌다. 그리고 1604년 2월 오대산에서 스승 휴정의 부음을 받고 묘향산으로 가던 중 선조의 부름을 받고 조정으로 가서 일본과의 강화를 위한 사신으로 임명받았다. 1604년 8월 일본으로 가서 8개월 동안 노력하여 성공적인 외교성과를 거두었고, 전란 때 잡혀간 3,000여명의 동포를 데리고 1605년 4월에 귀국하였다. 밀양의 표충사(表忠祠), 묘향산의 수충사(酬忠祠)에 제향되었으며, 저서로는 문집인 『사명당대사집』 7권과 『분충서난록(奮忠紓難錄)』 1권 등이 있다. 시호는 자통홍제존자(慈通弘濟尊者)이다.

책판에 수록된 내용을 살펴보면, 임진왜란으로부터 정유재란의 기간 동안 왜장(倭將)인 가토[加藤淸正]의 진영을 왕래하면서 견문한 것을 기록한 「청정영중탐정기(淸正營中探情記)」가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적의 정세에 대한 보고인 「별고적정(別告敵情)」, 적을 토벌하고 백성을 보호하고자 하는 뜻으로 올린 「토적보민소(討賊保民疏)」, 그리고 왜국의 명승들에게 주는 글, 그의 행적과 사적, 여러 문인들과 교류한 시와 만사 등이 함께 실려있다.

이 판목은 경상남도 밀양시 표충사(表忠寺)에 소장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분충서난록』을 통해 승려인 유정이 전쟁을 직접 체험하면서 국가의 위기 상황을 고민하고 왜적의 정세를 보고하는 글을 짓는 등 구국제민(救國濟民)의 마음을 살펴볼 수 있다. 그리고 『사명당집』(1612년 간행)에서 빠진 시문과 사적을 모으고 여러 문인들의 발문을 받아 ‘록(錄)’으로 만들었다는 점과, 특히 이것을 유학자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참고문헌

『송운대사 분충서난록의 편찬 태도와 실기문학으로서의 위치』(손병국, 『불교어문논집』2, 1997)
『경남문화재대관』(경상남도, 1995)
디지털한국학(www.koreandb.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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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김효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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