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기옥(奇玉), 호는 강재(剛齋). 아버지는 송환명(宋煥明)이며, 어머니는 평산신씨(平山申氏)로 신사덕(申思德)의 딸이다. 송시열(宋時烈)의 6대손으로 김정묵(金正默)의 문인이다.
학문은 독서궁리(讀書窮理)를 근본으로 하고 반궁실천(反窮實踐)을 목표로 삼아, 평생을 이이(李珥)와 김장생(金長生)·송시열의 전통을 이어받아 그것을 지키는 데 전념하였다. 1798년(정조 22) 경상도관찰사 한용화(韓用和)의 천거로 영릉참봉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은 것을 비롯, 이듬 해 원자궁강학청료(元子宮講學請僚), 1800년 시강원자의(侍講院諮議)와 호조좌랑, 1801년(순조 1) 사헌부지평 등에 잇따라 임명되었지만 모두 취임하지 않았다.
그 뒤에도 1804년 군자감정(軍資監正), 이듬 해 사헌부집의, 1812년 세자시강원진선·공조참의, 1815년 시강원찬선·공조참판, 1816년 대사헌 등에 임명되었으나 취임하지 않고 당대의 거유로서 많은 제자를 배출하였다.
평생을 두고 벼슬을 사양한 것은 스승 김정묵이 뜻하지 않은 사건에 연루되어 억울하게 유적(儒籍)에서 제적되었기 때문으로 전한다. 그러나 72세가 되던 1830년 왕의 간곡한 부름을 받아 세손의 시강원찬선을 거쳐 대사헌을 지냈고, 이듬 해 이조참판이 되었다가 1838년(헌종 4) 80세의 수직(壽職, 80세 이상이면 양인이나 천인을 막론하고 주던 관직)으로 정헌대부(正憲大夫)에 가자(加資, 정3품 통정대부(通政大夫) 이상의 품계(品階)에 올려 주는 것)되었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저서로는 『강재집(剛齋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