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새해 첫날 아침에 이루어지는 대궐 안의 조회에 사용될 목적으로 지어졌으나 뒤에 궁중무용인 정재(呈才)가 수반되어 무악화(舞樂化)되었다.
태조가 아직 왕위에 오르기 전 어떤 사람이 지리산의 돌로 된 벽에서 장차 등극하리라는 글(寶錄)이 적힌 기이한 책을 얻어 바쳤다는 내용의 노랫말로 되어 있다. 4언1구의 한시에 모두 16구로 되어 있다.
선율은 『의례경전통해시악(儀禮經傳通解詩樂)』의 「녹명(鹿鳴)」제1장과 같고, 두 번 반복된다. 세종 때에는 동지(冬至)·정조(正朝) 및 8월과 9월의 양로연(養老宴) 아악(雅樂)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태종 때에는 국왕이 종친 형제를 위하여 베푸는 연회음악에서 당악정재(唐樂呈才)로 사용된 적도 있어 그 성격이 불분명한 점이 엿보인다. 지금은 연주되고 있지 않고, 『악학궤범』에 율자보(律字譜)로 악보와 노랫말이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