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0년(의종 24) 무신정권이 성립되어 정중부(鄭仲夫)ㆍ경대승(慶大升)을 거쳐 이의민(李義旼)이 정권을 잡은 뒤에도 위정자나 탐혹한 지방관에 의한 실정은 심하여 민란이 그치지 않고 계속되었다.
그리하여 탐라를 비롯한 진주ㆍ안동 등지에서 계속하여 민란이 일어나자, 이에 편승하여 1187년에는 순주 귀화소에 안치(安置)되어 있던 적(賊) 수백명이 반란을 일으켜 사방으로 흩어져서 노략질을 자행하였다. 이에 병마사가 군대를 내어 이들을 잡아들임으로써 난은 진정되었다.
여기에서 귀화소에 안치되어 있던 적이라 함은 당시 소(所)가 지방특산물 생산 이외에, 특수한 경우에는 감옥의 구실도 하였던만큼 죄를 짓고 옥에 갇혀 있던 사람들로 보인다. 어떤 죄명이든 감옥에 갇힌 죄인까지 반란을 일으킬 정도라면 당시 고려사회가 매우 심각한 혼란에 빠져 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