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초는 3∼5%의 초산과 유기산·아미노산·당·알코올·에스테르 등이 함유된 산성 식품이다. 크게는 곡류·알코올성 음료·과실류 등을 원료로 하는 양조식초와 빙초산·초산을 주원료로 하는 합성식초로 나누어진다. 강한 산성으로 방부효과도 있어 식품의 저장에도 이용되고 의약품으로도 이용된다.
우리 나라에서 식초를 사용한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술이 변하면 초가 된다는 말이 있고 ≪지봉유설 芝峯類說≫에서도 “초를 다른 말로 쓴 술이라 한다.”고 한 것으로 미루어 보면 초의 기원 및 제조법이 주류의 발달과 함께 했을 것으로 본다.
양조법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있었으므로 식초도 같은 시기에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고려시대에는 식초제조법에 관한 기록은 없으나 초를 이용한 기록들이 여러 문헌에 나타나고 있다. ≪고려도경 高麗圖經≫에는 “앵두가 초맛 같다.”고 기술하였다.
≪해동역사 海東繹史≫에도 식품의 조리에 초가 쓰였다고 하였다. ≪향약구급방 鄕藥救急方≫에는 의약품으로 다양하게 초가 사용되어 부스럼이나 중풍 등을 치료하는 데에 이용되었다고 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초의 재료 및 제조법을 기록한 문헌들이 나타나고 있다. ≪고사촬요 攷事撮要≫는 식초제조법이 기록된 최초의 문헌으로 보리를 재료로 하여 발효시켜 만든 양조초가 기록되어 있다.
≪동의보감 東醫寶鑑≫에는 “초는 성(性)이 온(溫)하며 맛이 시고 독이 없어 옹종(擁腫)을 없애고 혈운(血暈)을 부수며, 모든 실혈(失血)의 과다와 심통(心痛)과 인통(咽痛)을 다스린다. 또한 일체의 어육과 채소독을 소멸시킨다.”고 하여 초의 약성을 기술하고 있다.
≪규곤시의방 閨壼是議方≫에는 밀을 사용한 곡초 이외에 매자초라는 이름의 과실초 만드는 법이 기록되어 있다. 매자초는 오매(烏梅)를 초에 담갔다가 볕에 말려 가루로 만들어 필요할 때에 사용하는 합성과실초이다.
≪산림경제≫에는 쌀·밀·보리를 재료로 하는 곡초 이외에 감·대추를 재료로 하는 과실초와 창포·도라지를 재료로 하는 채초(菜醋), 또 꿀을 이용하는 식초의 제조법도 기록되어 있다.
≪동국세시기 東國歲時記≫와 ≪열양세시기 洌陽歲時記≫·≪경도잡지 京都雜志≫ 등에는 초장을 절식과 함께 시식하는 내용이 있다. ≪증보산림경제≫에는 “초는 장(醬)의 다음으로 맛을 돋우어주는 바가 많아서 가정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한 번 만들어 두면 오래 가고 또 비용을 절약하는 바가 적지 않다.”라고 하여 초의 중요성을 기록하고 있다. 이로써 옛날 우리 나라 가정에서 초가 널리 만들어져 쓰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식초의 제조법은 ≪규곤시의방≫·≪산림경제≫·≪증보산림경제≫·≪임원십육지≫ 외에 ≪색경 穡經≫·≪해동농서 海東農書≫·≪농정회요≫·≪역주방문≫·≪규합총서≫ 등에 다양하게 기록되어 있다. 재료에 따른 종류도 상당히 많다.
그 가운데에 ≪규합총서≫에 기록되어 있는 식초제조법을 보면 “병일(丙日)에 물 한 동이에 누룩가루 4되를 볶아 섞어서 오지항아리에 넣어 단단히 봉하여 둔다. 정일(丁日)에 찹쌀 한 말을 씻고 또 씻어(百洗) 쪄서 더운 김에 그 항아리에 붓고 복숭아나무 가지로 저어 두껍게 봉하여 볕바른 곳에 두면 초가 된다.”고 하였다.
고문헌들에 수록된 식초제조법에는 공통적으로 길일을 택하고 부정을 멀리하였다. 온갖 정성을 기울여 순량한 초를 만들어 잘 보존하기에 마음을 쏟았음을 알 수 있다.
옛날에 우리 나라 주부들은 초병을 부뚜막에 두어 술을 붓고 주부가 부엌을 드나들 때마다 성심어린 마음으로 “초야 초야 나와 살자 나와 살자.” 하면서 초병을 자주 흔들어주던 풍습이 있었다.
이와 같이 초병을 부뚜막에 두고 자주 흔들어주는 것은 부뚜막이 정결하고 한적하면서도 주부가 자주 드나드는 곳이므로 식초발효를 위한 온도관리에 적당한 장소인 동시에 흔들어줌으로써 호기성인 초산균의 발육과 발효에 필요한 산소를 충분히 공급하여주는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현대에는 곡류·알코올성음료·과실류 등을 원료로 한 양조초와 빙초산 또는 초산을 주원료로 한 합성초 또는 양조초에 향신료를 첨가하여 만든 가공초 등의 여러 가지 식초가 이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