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책. 채색지도가 첨부된 필사본. 규장각 도서에 있다. 이밖에도 1780년대 후반에 편찬된 『신계읍지』가 규장각 도서에 있는데, 현존하는 신계현의 가장 상세한 읍지로서 의의가 크다. 1871년에 편찬된 『해서읍지(海西邑誌)』 속의 신계현읍지에도 재정적인 내용을 기록한 사례가 첨부되어 있다.
내용 구성은 강계(疆界)·방리(坊里)·도로(道路)·건치연혁(建置沿革)·군명(郡名)·관직(官職)·관안(官案)·산천(山川)·성씨(姓氏)·물산(物産)·진공(進貢)·학교(學校)·단묘(壇廟)·공해(公廨)·제액(題額)·제언(堤堰)·창고(倉庫)·읍고(邑庫)·교량(橋粱)·역원(驛院)·사찰(寺刹)·고적(古蹟)·진보(鎭堡)·인물(人物)·과갑(科甲)·한전(旱田)·수전(水田)·조적(糶糴)·칙수(勅需)·전세(田稅)·대동(大同)·균세(均稅)·봉름(俸廩)·군교(軍校)·군병(軍兵)·군기(軍器) 등으로 되어 있다.
읍지의 말미에는 1763년(영조 39)∼1764년에 수령을 지낸 정존중(鄭存中)이 쓴 것으로 보이는 발문이 들어 있다. 이 읍지는 발문이 쓰여진 영조 때 편찬된 읍지를 저본으로 하여 작성한 것으로서, 읍지의 내제도 ‘신계현읍지’라 하여 1896년 지방제도개혁 이전의 명칭으로 되어 있다.
같은 영조 때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 중의 신계현읍지와 함께 1760년대의 신계현 지방 사정을 파악할 수 있는 좋은 자료인데, 이 읍지의 내용이 보다 풍부하여 사료적 가치가 높다. 즉, 향교·제영·읍고·진보·과갑·칙수·군교 등의 항목이 첨가되었으며, 산천·공해·효자·창고·효녀·열녀 등의 내용기록이 상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