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계군 ()

대동여지도 중 황해도 신계 부분
대동여지도 중 황해도 신계 부분
인문지리
지명
황해도 중동부에 위치한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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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황해도 중동부에 위치한 군.
개관

동쪽은 강원도 이천군, 서쪽은 서흥군, 남쪽은 평산군과 금천군, 북쪽은 수안군 · 곡산군에 각각 접하고 있다. 동경 126°18′∼126°43′, 북위 38°20′∼38°42′에 위치하며, 면적 819.9㎢, 인구 5만 6476명(1944년 현재)이다. 8개 면 70개 이로 되어 있으며, 군청 소재지는 신계면 향교리이다.

자연환경

이 군의 동부에는 마식령산맥이 강원도와 경계를 이루면서 북동에서 남서방향으로 달리며 율목산(栗木山, 691m) · 향로봉(香爐峰, 760m) · 고주애산(高住崖山, 754m) · 설화산(雪花山, 581m) 등의 연봉이 군내에 뻗어 있다.

서부는 멸악산맥의 지맥으로 오봉산(五峰山, 642m) · 춘광산(春光山, 522m) · 복희산(卜希山, 576m) 등이 산줄기를 이루며, 북부에는 오암산(烏巖山, 561m) · 덕업산(德業山, 1,019m) · 태을산(太乙山, 681m) 등의 높은 산들이 고원을 이루고 있으며, 이 밖에 태봉산(胎封山) · 학소봉(鶴巢峰) · 모란봉(牡丹峰)이 있다.

한편 예성강의 지류인 지석천(支石川)이 군의 중앙을 남류하다가 남부에서 예성강에 합류하면서 주변에 신계분지를 형성한다. 따라서 이 군은 3면이 산으로 에워싸여 있는 산악지대로서 예로부터 신계 · 곡산 · 수안을 ‘산중삼읍(山中三邑)’이라 했으며, 그 중 신계는 다분히 남부 평야와의 점이지대로서의 성격을 띠고 있다.

대륙성기후가 뚜렷하며 기온의 연교차가 크다. 연평균기온 9.9℃, 1월 평균기온 -7.9℃, 8월 평균기온 25.0℃, 연강수량 1,100㎜이다.

역사

[고 대]

신석기시대 이전의 유물 · 유적은 발견된 바 없으나 이웃 평산군과 금천군 등지에서 구석기시대의 유적과 신석기시대의 유물 · 유적이 발굴되었으므로 이 곳에도 신석기시대 이전의 문화가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다.

고면 정봉리의 돌덧널무덤에서 세형동검이 출토되었고, 강원도 옛 회양군 회양면 지석리에는 거대한 고인돌이 있어서 청동기시대에 부족사회 이상 수준의 정치집단이 존재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삼국시대에는 처음 백제의 영토로서 사소올(沙所兀)과 매차홀(買且忽) 두 고을이 편성되어 있었다. 4세기 중엽부터 백제와 고구려 사이의 치열한 항쟁이 이 곳에서 벌어져 결국 375년(소수림왕 5) 매차홀이 고구려의 영토가 되어 수곡성(水谷城)이 축조되었고, 392년(광개토왕 2) 사소올도 고구려의 영토가 되었다.

백제는 이 지역을 탈환하기 위해 여러 차례 공격했으나 모두 실패하였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 사소올은 757년(경덕왕 16) 신은(新恩)으로 고쳐져 그 지명이 고려 때까지 사용되었고, 수곡성은 748년 현으로 편성되었으며 757년 모두 영풍군에 소속되었다.

[고 려]

수곡성은 고려 건국 후 협계현(俠溪縣)으로 고쳐졌으며, 1018년(현종 9) 신은현과 함께 곡주의 속현이 되었다. 1069년(문종 23) 일시적으로 서해도에서 경기도로 이속된 일이 있다. 신은은 1258년(고종 45) 최의(崔竩) 일파를 제거한 공로로 위사공신(衛社功臣)에 봉해진 이공주(李公柱)의 고향인 까닭에 담주(覃州)로 승격되었으나 곧 원래대로 복구되었다.

고려조의 영지(靈地)로 꼽히는 삼소(三蘇) 가운데 북소가 곧 기달산으로서 명종 때와 우왕 때 두 번에 걸쳐 이 속에 궁궐을 지으려고 공사를 일으켜서 지금도 촌면 궁암리에 북소궁의 터가 있다. 1391년(공양왕 3) 과전법을 실시하면서 경기도를 확대할 때 두 현 모두 경기도에 이속되었다.

[조 선]

1394년(태조 3) 한양으로 천도하고 경기지역을 개편함으로써 신은과 협계는 서해도로 환속되었다. 1396년에 비로소 신은현에 감무가 부임했고, 협계현은 신은현에 합병되었다. 1413년(태종 13)부터 정식 수령인 현령이 부임했으나, 고을 이름이 신계로 정해진 것은 1445년(세종 27)이다.

이 무렵의 인구는 《세종실록》 지리지에 의하면 총 808호, 3,189명이었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이 일어나 황해병사 이익흥(李益興)이 봉산군수 · 신계현령 · 문화현령과 함께 3,000명의 군사를 지휘해 이 곳에서 후금의 군대와 대적했으나 대패하고 문화현령 강신준(姜信俊)은 전사하였다. 1759년(영조 35) 당시 13방 55리로 편성되었고, 인구는 총 2,998호, 7,955명으로 면적에 비해 적은 편이었다.

[근 대]

1890년 고면 태을리에 천주교당이 건립되어 신문화수용의 다리 구실을 하였다. 1895년 군으로 개편되었고, 1935년 당시에는 8면 69리로 편성되어 있었으며, 1937년 수안군 대성면 승평리가 적여면에 편입되어 8면 70리로 되었다. 인구는 1942년에 총 9,375가구, 5만 1798명이었다.

1919년 3·1운동 당시 4월 9일 다미면 무시랑리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나 500여 명의 군중이 읍내로 행진해 식민지기관의 철수를 요구하다 헌병 · 경찰의 총격을 받고 해산되었으나, 만세시위는 장기간 계속되었다.

독립운동가로는 1924년 5월 압록강변을 시찰중이던 사이토 총독을 습격한 신흥무관학교 출신의 문창숙(文昌淑), 천도교인으로서 이 군의 만세시위를 주도하고 독립운동자금을 모으다가 체포된 이만기(李萬基) 등이 있다.

유물 · 유적

선사시대 유물로 고면 정봉리에서 출토된 세형동검과 세형동창이 있어서, 고조선 문화와 관련이 깊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이 지방은 고구려의 수곡성(水谷城)이 되었으나, 이 시대의 유물 · 유적은 전하지 않는다. 촌면 궁암리에는 고려 제19대 명종 당시에 구축한 삼소(三蘇) 중 하나인 북소궁지(北蘇宮址)가 기달산(箕達山)을 배경으로 남아 있다. 한때 고려가 이 곳으로 천도하려 했다고 전한다.

한편 마서면 초탄리에는 고려조의 숭록대부(崇祿大夫)였던 이나해(李那海)의 묘가 있다. 신계는 곡산 · 수안과 함께 산중고읍(山中古邑)의 하나로 군행정의 중심지였다. 이 곳에 있던 옛날의 관아와 여기에 부속된 건물을 살펴보면, 객사의 대청 6칸을 비롯해 동상방(東上房) · 영작청(營作廳) · 사후청(伺候廳) 등 40여 칸의 건물이 있었으며, 아사(衙舍)는 70여 칸의 건물이 질서 있게 배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객사와 아사 근처에는 이요정(二樂亭) · 청심정(淸心亭) · 수림정(秀林亭) 등의 정자가 주위 정경과 어울려 운치를 돋우었다. 한편 신계면 향교리에는 고색이 창연한 향교건물이 있다. 대성전 3칸, 명륜당 10칸 등의 웅장한 향교가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1533년(중종 28)에 현령 정세신(鄭世臣)이 개축한 이후의 일이다.

또 사지면 태봉리에는 정유재란 당시 왕실의 비빈 일행이 수안군으로 피난 와서 선조의 원손자를 낳고 그 태를 묻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이 있다.

교육 · 문화

이 군은 지형상 도시문화권과 거리가 멀고 교통도 불편하며 교육의 발전도 저조한 편이다.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는 신계면 향교리에 향교가 있어 군내의 교화 · 교육사업의 주축이 되었다. 이 향교는 1530년(중종 25)에 현령 정세신이 본래의 퇴락한 건물을 철거하고 1534년에 새로이 확대, 증축한 것이다.

근대교육기관으로는 한말 초보적인 사숙(私塾)이 개설되었는데, 마서면에서는 성명미상의 이진사가, 다율면 백곡리에는 백남윤(白南潤)이 각각 사숙을 설립했으나 뒤에 보통학교로 개편되었다.

이 군내에는 중등교육과정이 없어 보다 큰 읍이나 도시로 유학을 했으며, 실업교육으로 1년과정의 축산실업학교가 설립되었다. 1945년 현재 학교상황을 보면, 국민학교 9개교가 있으며 그 밖에 축산실업학교 1개교가 있다.

산업 · 교통

신계군은 산악지방이므로 농경지의 대부분은 밭이며, 주로 내한성 농작물을 경작한다. 주요 농산물은 조 · 콩 · 밀 · 귀리 · 옥수수 등이며, 특히 옥수수의 생산은 황해도 생산량의 20%를 차지한다. 특용작물로 잎담배 · 인삼 · 청마 · 대마 등의 재배가 많으며, 사지면의 지석천 유역에서는 목초지를 조성해 면양과 젖소의 사육이 활발하다.

특히 곡산군과의 경계인 지석천 유역은 목초지 재배에 입지조건이 좋다. 1935년에 면양목장이 이 곳에 자리했고 약 150여 마리를 사육한 바 있다. 임산물의 부산물과 밤 · 송이버섯 · 표고버섯 등의 산출이 많아 도시에 공급된다.

광업은 다율면 백곡리에서 금, 마서면 은점리에서 은, 마서면 삼거리에서 형석이 채광된다. 이 군의 임야에서 나는 머루를 원료로 주석산을 만든다. 상업활동은 5일장으로 신계면에 두 개의 장이 있고, 촌면 · 다율면을 제외한 5개 면에 하나씩의 장이 서는데, 신계 · 정봉(丁峰) · 고은(古恩) · 은점(銀店) · 대평(大坪) · 보음(甫音)장 등이 있다.

교통은 군의 대부분이 험준한 산지이므로 불편하다. 철도는 경의선의 남천역에서 분기하는 이천선(伊川線)이 군의 중앙을 남북으로 지난다. 도로교통은 신계를 중심으로 해 남천 · 곡산 · 수안 · 금천군 시변리를 연결하는 2등도로가 X자형으로 놓여 있고, 그 밖에 신계∼신막간의 3등도로가 있다.

고면 천개리 두현동에는 ‘두현약수’가 있는데 위장병에 특효가 있다고 알려져 인근은 물론 먼 곳에서도 환자가 찾아오며, 여름에는 피서객까지 몰려든다.

읍 · 면

[고면古面]

군의 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137.24㎢, 인구 8,097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정봉리이다. 면의 동부에 각후봉(角後峰, 567m) · 율목산 · 고주애산 등이 연달아 솟아 있고, 중앙에는 향로봉이 솟아 있어 면 전체는 일반적으로 산지가 많다. 면의 서북부에서 예성강의 지류인 고신은천(古新恩川)이 남쪽으로 흘러 연안에 소규모의 평야가 형성되어 경작지로 이용된다.

주요 농산물은 보리 · 콩 · 조 · 옥수수 · 인삼 등이다. 도로는 신계면 향교리에서 양덕 방면으로 향하는 2등도로가 면내를 남북으로 지나는 외에 각 주요 마을에 이르는 등외도로가 있으나 교통은 불편하다.

취락형식도 타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산촌형(散村型)이다. 명승지로는 천개리 두현동에 있는 두현약수가 예로부터 유명하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개교가 있다. 정봉(丁峰) · 직동(直洞) · 왕당(汪唐) · 성내(城內) · 화천(花川) · 화개(華蓋) · 입암(立巖) · 태을(太乙) · 천개(天開) · 무고(武庫) 등 10개 이가 있다.

[다미면多美面]

군의 동남단에 위치한 면. 면적 99.34㎢, 인구 9,061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추천리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계군 수면(水面)의 6개 이와 옛 토산군(兎山郡) 미원면(美原面)의 4개 이를 합쳐 미수면(美水面)으로 새로 편성해 신계군에 속하였다.

1937년 다면(多面)의 금성 · 효자 · 중산의 3개 이를 합쳐 다미면으로 개칭하였다. 면의 동쪽에 국사봉(國士峰, 439m), 서남쪽에 학봉(鶴峰, 401m), 북부에 고주애산과 거무산(巨武山) 등이 솟아 그 여맥이 면 전역에 뻗어내리면서 곳곳에 크고 작은 구릉을 기복시킨다.

면의 동부에 미수천(美水川)이 흐르고 서부에 고신은천이 부근의 작은 시냇물을 모아 서쪽으로 흐른다. 이들 하천 유역에 소규모의 평지가 형성되어 경작지와 거주지로 이용된다. 주요 농산물은 밀 · 콩 · 보리 · 조 · 인삼 등이다. 도로는 경기도 의정부∼평양간의 2등도로가 면의 서부를 남북으로 통과하고 도중에서 여러 주요 마을에 등외도로를 분기시키지만, 교통은 대체로 불편하다.

명승유적으로는 고려의 왕녀 무란(茂蘭)의 전설이 있는 무란산 모란봉이 강성리에 있다. 이 밖에 중산리에 수령 1,500년의 은행나무가 있고, 지리에 수령 1,300년의 느티나무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개교가 있다. 추천(楸川) · 중산(中山) · 효자(孝子) · 금성(金城) · 백오(柏塢) · 무시랑(武侍郎) · 백암(白巖) · 부용(芙蓉) · 강성(江城) · 신성(新星) · 지(芝) · 사암(笥巖) · 가무(歌舞) 등 13개 이가 있다.

[다율면多栗面]

군의 남단에 위치한 면. 면적 123.31㎢, 인구 4,912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구만리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이 면은 다면과 율면의 지역으로 정해졌으나, 그 뒤 율면에 다면의 백곡 · 죽루 등 2개 이를 편입시키고 두 면의 이름을 따서 다율면이라고 하였다.

면의 동남단에 학봉이 솟아 있을 뿐이며, 그 밖의 지역은 대체로 100m 내외의 구릉성 평지이다. 면의 서북부를 예성강이 남쪽으로 흐르고, 예성강의 지류인 고신은천을 비롯한 작은 시내가 곡류를 거듭하며, 이들 하천 유역에 깊은 계곡을 형성한다.

주요 농산물은 쌀 · 보리 · 조 · 옥수수 등이며 특용작물로 잎담배와 인삼 등을 많이 재배한다. 가내부업으로 누에치기와 기직(機織)을 한다. 광업으로는 백곡리에 금광이 있고 반시리에서 석면이 채굴된다.

도로는 동부지방에 경기도 의정부∼평양간의 2등도로가 통과하고 남서부 지방에는 남천읍에서 북상하는 2등도로가 미우동에서 의정부∼평양간 2등도로에 합친다. 구만리에 인천이씨(仁川李氏)의 동족마을이 있고, 수령 1,500년의 은행나무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개교가 있다. 구만(九灣) · 삼미(三美) · 반시(班市) · 침교(砧橋) · 송릉(宋陵) · 죽서(竹棲) · 백곡(白谷) 등 7개 이가 있다.

[마서면麻西面]

군의 서남단에 위치한 면. 면적 109.16㎢, 인구 6,917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초탄리이다. 본래 구 신계군의 마면과 서면의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두 면을 합쳐 마서면으로 개칭해 새로운 신계군에 속하게 되었다.

면의 서부에 복희산, 서북부에 춘광산, 남부에 묘산(猫山, 371m) 등이 솟아 면의 세 방면이 산지로 둘러싸였고, 동쪽으로 갈수록 지대가 낮아진다. 예성강이 동부를 곡류하며, 남 · 중 · 북부에서 지석천 · 구락천(龜洛川) · 신계천 등의 지류를 합친다.

예성강 본류와 지류 유역은 비교적 넓은 평지가 전개되어 주요 거주지와 농경지로 이용된다. 그러나 논농사보다는 밭농사가 주가 되며, 주요 농산물은 콩 · 보리 · 조 · 감자 등이다. 광업으로는 은점에 은광이 있으며 삼거리에서 형석이 채굴된다.

도로는 면의 동북부를 남천∼수안간의 2등도로가 남북으로 통하고, 중부에는 동서로 구락천을 따라 3등도로가 놓여 경의선의 신막역과 연락되며, 이들 기간도로에서 각 주요 마을을 연결하는 등외도로가 분기된다.

명승 · 유적지로는 천곡리월은산에 월은사가 있으며 초탄리에 고려 판밀직사사(判密直司事)를 지낸 이나해의 묘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개교가 있다. 초탄(草灘) · 증영(增永) · 삼거(三巨) · 번지(番地) · 구락(龜洛) · 천곡(泉谷) · 신촌(新村) · 은점(銀店) · 갈현(葛峴) 등 9개 이가 있다.

[사지면沙芝面]

군의 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138.73㎢, 인구 9,816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석교리이다. 본래 구 신계군의 사면과 지면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사지면이 되었다. 면의 동단에 봉화봉(烽火峰, 327m), 서남부에 감적산(甘積山, 386m) 등이 솟아 있지만 그 이외의 지역은 대체로 현무암으로 된 용암지대로서 평탄하다.

예성강의 지류 지석천이 흘러 면의 곳곳에 깊은 계곡을 이룬다. 주요농산물은 콩 · 조 · 보리 · 감자 · 인삼 등이다. 도로는 경의선 남천역에서 평양으로 향하는 2등도로가 거의 중앙부를 남북으로 거의 종관하고, 북부에는 곡산∼수안간의 3등도로가 동서로 횡단하며, 그 외 각 주요 마을에 이르는 등외도로가 잘 정돈되어 교통이 편리한 편이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개교가 있다. 석교(石橋) · 신(新) · 굴원(屈源) · 원교(院橋) · 태봉(胎峰) · 막대(幕垈) · 화성(花城) · 주답(注畓) · 산북(山北) · 사이곡(沙伊谷) 등 10개 이가 있다.

[신계면 新溪面]

군의 중앙에 위치한 면. 면적 46.60㎢, 인구 6,864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향교리이다. 1916년 중동면(中東面)을 신계면으로 개칭하였다. 면의 중부와 북부에 300m의 구릉들이 솟아 있고 그 사이를 예성강의 지류인 신계천이 서남쪽으로 곡류하면서 마서면으로 들어간다.

신계면 남쪽에는 이 내를 건너기 위해 남천교(南川橋)가 놓여 있다. 동남단에도 그리 높지 않은 구릉이 기복되었는데, 북부 산지와의 사이를 고신은천의 상류가 남쪽으로 흘러 다율면으로 들어간다. 이들 하천 유역의 저지는 토지가 비옥해 경작지로 이용된다.

주요 농산물은 쌀을 비롯해 콩 · 보리 · 밀 · 조 등이다. 도로는 향교리를 중심으로 2등도로가 남쪽으로는 경기도 연천 방면으로, 북쪽으로는 평양 · 곡산 방면으로 통하고 3등도로가 서쪽으로 사리원 · 재령 방면과 연락된다. 그 밖에 각 주요 마을에 등외도로가 개설되어 교통은 편리하다.

유적으로는 향교리 동쪽에 신계향교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향교리 남쪽의 지연은 명승지이며, 향교리 서쪽에 솟은 학소봉을 중심으로 해 신계팔경이 있으며, 신계천의 동굴은 여름철 피서지로 이용된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개교가 있다. 향교(鄕校) · 성북(城北) · 능수(陵水) · 마산(馬山) · 석정(石井) · 회동(回東) 등 6개 이가 있다.

[적여면赤餘面]

군의 서북단에 위치한 면. 면적 95.71㎢, 인구 6,625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대평리이다. 본래 구 신계군의 적면과 여면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두 면을 합쳐 적여면이 되면서 신계군에 속하였다.

면의 서남부에 높이 500m 이상의 산이 솟아 있고 북단에도 오봉산과 오암산 등이 연달아 있어 산지를 이루지만, 지세는 동쪽으로 점차 저하되어 평지가 계속된다. 서부산지에서 발원하는 대평천(大坪川)은 동쪽으로 흘러 예성강으로 들어가고, 이 하천과 거의 병행해 면의 남부를 동쪽으로 흐르는 흑천(黑川)도 역시 예성강으로 들어간다.

이 두 하천 연안에 비교적 넓은 평지가 전개되어 주요 경작지 및 거주지로 이용된다. 주요 농산물은 쌀 · 보리 · 콩 · 조 등이다. 도로는 대평리를 중심으로 해 신계∼수안간의 2등도로가 통과하고 그 밖에 각 주요 마을을 연결하는 등외도로가 연결되어 있다.

명승지로는 우암리에 신수굴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개교가 있다. 대평(大坪) · 흑천(黑川) · 사정(沙井) · 목전(木田) · 삼합(三合) · 화야(花野) · 우암(牛巖) · 신대(新垈) · 승평(昇坪) · 대정(大井) 등 10개 이가 있다.

[촌 면 村面]

군의 최동북단에 위치한 면. 면적 69.64㎢, 인구 4,184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사현리이다. 면의 동북단에 덕업산 · 양칠봉(良七峰, 711m) 등의 높은 산악이 솟아 있고, 그 여맥이 서쪽으로 뻗어내려 몇 개의 구릉을 기복시키지만 대체로 200∼300m의 평탄면을 이룬다.

양칠봉에서 발원하는 남강의 지류는 면의 북부를 서북쪽으로 흘러 곡산군으로 들어가고, 강원도 이천군에서 발원하는 지석천은 남부를 서남쪽으로 흘러 사지면으로 들어간다. 이들 하천 유역에 규모는 적으나 평지가 형성되어 주요 산업지대와 거주지역이 된다.

밭농사를 주로 하며 주요 농산물은 콩 · 팥 · 조 · 보리 · 메밀 등이다. 부업으로는 누에치기 · 소사육 · 목탄제조 등을 하며 동부 산간지방에서는 송이 · 표고버섯 등을 재배하기도 한다. 도로는 곡산∼신계간의 2등도로가 면의 서남단을 통과하며, 사현리를 기점으로 각 마을을 연결하는 등외도로가 마련되어 있으나 교통은 대체로 불편하다.

유적으로는 궁암리에 고려 때의 북소궁지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개교가 있다. 사현(沙峴) · 궁암(宮巖) · 이탄(梨灘) · 율암(栗巖) · 세림(細林) 등 5개 이가 있다.

광복 후 변천

황해북도 북동부에 있는 군. 북쪽은 곡산군 · 수안군, 서쪽은 서흥군, 남쪽은 평산군 · 금천군 · 토산군, 동쪽은 아호비령산맥(阿虎飛嶺山脈)을 경계로 강원도(북한)의 판교군 · 이천군과 접하고 있다. 동경 126°18′∼126°44′, 북위 38°20′∼38°40′ 사이에 있고, 면적 699㎢, 인구 13만 4500여명(1996년 추정)이다.

1952년 행정구역 개편시 북쪽 일부지역이 곡산군과 수안군 등에 이관되었고, 신계군의 사지면의 일부와, 신계면 · 적여면 · 마서면 · 다율면 · 다미면 · 고면 등으로 개편되었다.

행정구역은 신계읍과 마산(馬山) · 신흥(新興) · 태을(太乙) · 천개(天開) · 정봉(丁峰) · 왕당(汪塘) · 중산(中山) · 금성(金城) · 추천(楸川) · 부용(芙蓉) · 신성(新星) · 가무(歌舞) · 백곡(白谷) · 침교(砧橋) · 구락(龜洛) · 지석(支石) · 은점(銀店) · 천곡(泉谷) · 대정(大井) · 화야(花野) · 사정(沙井) · 대평(大坪) · 화성(花城) · 해포(海浦) · 대성(大成) · 원교(院橋) · 능수(陵水) 등 27개 이로 되어 있다. 군 소재지는 신계읍이다.

자연환경

이 군의 동쪽은 아호비령산맥(阿虎飛嶺山脈)이 뻗어내리며 태을산(太乙山, 681m)에서 향로봉(香爐峰, 760m) · 고주애산(高柱崖山, 754m) · 설화산(雪花山, 581m) · 거무산(巨武山, 823m) 등의 높은 산이 솟아 있다. 남부는 학봉(鶴峰, 401m) · 국사봉(國士峰, 439m)이 있고, 이들 사이를 예성강(禮成江) · 구연강(九淵江)과 그 지류들이 횡곡(橫谷)을 이루면서 남쪽으로 흐른다.

서쪽은 춘광산(春光山, 522m) · 하희산(下希山, 576m) 등의 산이 솟아 있고, 북쪽은 감적산(甘積山, 388m) · 조암산(鳥岩山, 561m) · 오봉산(五峰山, 642m) 등의 산이 연속되어 수안군과의 자연경계를 이루고 있다.

군의 중앙은 제4기의 현무암 대지가 형성되었는데, 이 대지를 다시 침식해 유년곡을 파내고 있다. 특히 예성강의 지류인 대평천(大坪川) · 지석천(支石川) · 신계천 등은 하안에 낮은 곡벽을 만들어 유년기 지형의 표본지형을 잘 나타내고 있다.

연평균기온 9.4°, 1월 평균기온 -7.8°, 8월이 24.3°이며, 연평균강수량은 1,146.2㎜이다. 바람은 연중 북동풍이 많이 분다. 토양은 현무암 · 석회암 위에 발달한 산림갈색토로 이루어졌다.

산업 · 교통

이 군은 지질이 제4기의 현무암이 풍화한 화산성 토양이어서 농업에 유리하지 않다. 경지는 군면적의 25%에 불과하며, 이 중 논은 27%, 밭이 63%이다. 농산물은 옥수수 · 콩이 주를 이룬다. 과수원도 많아서 사과가 67%, 배가 24%, 복숭아가 8%를 차지한다. 면양(緬羊)을 치는 규모가 큰 목장이 있고, 임산자원도 풍부하다.

은점리에는 은광산이 있고, 백곡리의 금동(金洞)마을에는 금광산이, 지석리에는 형석광산이 있다. 교통은 군의 중앙을 청년이천선(靑年伊川線 : 평산∼세포) 철도가 남북으로 종관하고, 신계를 중심으로 평산 · 서흥 · 수안 · 곡산 · 판교 · 토산 등과 연결되는 도로가 통해 있다.

[유적 및 명소]

군의 북쪽 군계에 있는 신곡저수지는 관광지로 개발되었고, 침교약수(砧橋藥水) · 추천약수(楸川藥水)가 있다. 신계의 진산인 구봉산(九峰山)에는 학소대(鶴巢臺) · 강선대(降仙臺) 등의 명소가 있고, 신계의 남쪽 교외에는 지연(紙淵)이 있다. 1530년(중종 25)에 건립된 향교리의 신계향교는 6·25전쟁으로 소실되었다.

천곡리 월은산(月隱山, 393m) 아래에는 월은사가 있었는데, 6·25전쟁으로 크게 파손되어 지금은 자리만 남아 있다. 그 밖에 봉지사(鳳池寺) · 송천사(松泉寺) · 양수사(兩水寺) · 쌍계사(雙溪寺) 등의 절들이 있었으나, 이들도 모두 6·25전쟁 때 불타 없어졌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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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대동지지』
『황해도지』(황해도지편찬위원회, 1981)
『북한문화재 실태와 현황』(문화공보부문화재관리국, 1985)
『인물의 고향』-북한편(중앙일보사, 1991)
『북한지지요람』(통일원,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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