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역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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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세기 전반 일본이 설치한 신라어 통역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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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9세기 전반 일본이 설치한 신라어 통역관.
내용

신라와 일본 사이의 외교사절 교환이나 인적·물적인 상호교류에 따르는 신라어 통역관은 이전부터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신라역어’라는 이름의 통역관은 815년(헌덕왕 7) 1월 30일에 처음 설치되었다.

설치의 배경은, 첫째, 일본이 당나라에 보내는 견당사(遣唐使) 일행이 항해 도중 불시에 표류해 한반도에 상륙할지도 모를 비상사태를 대비함이다. 왜냐하면 신라가 백제를 정복한 이후 신라와 일본의 관계가 악화된 데다가, 일본에 표류하는 신라인들을 일본인들이 해친 사건도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 당시 중국 각지에서 신라인들이 두드러진 활약을 보이고 있었는데, 일본은 대당 교섭상 이들 신라인들의 협조가 필요함을 인식한 것이다. 일본측 문헌기록에 따르면 신라역어는 견당사의 대당 교섭에 있어서 주요한 구실을 한 듯하다. 그들은 통역뿐만 아니라 항해 안내, 실무 차원의 교섭 및 주요 안건에 대한 조언의 임무도 수행하였다.

일본 승려인 엔닌(圓仁)의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에는 신라역어로서 도현(道玄) · 박정장(朴正長) · 김정남(金正南) · 유신언(劉愼言) 등 4명의 이름이 보인다. 이들은 모두 신라인으로 보이며, 앞의 3명은 일본에서 임명한 견당사의 일행인 듯하다. 그러나 유신언은 중국추저우(楚州)에서 활약하고 있던 신라인으로서 신라역어의 임무을 일시 수행하기는 했으나, 견당사와는 무관하였다. 그는 나중에 추저우에 있던 신라방의 총관(摠管)이 되었다.

신라역어의 존재는 장보고(張保皐)와 함께 당시 동북아시아의 해상교역에서 차지하고 있었던 신라인들의 비중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
『일본후기(日本後紀)』
『연희식(延喜式)』
『한국사-고대편-』(이병도, 진단학회 편, 을유문화사, 1959)
『장보고의 신연구』(완도문화원,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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