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경기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신륵사는 세종의 능인 영릉(英陵)의 원찰(願刹)로 지정되어 1472년(성종 3) 대규모의 중창불사를 시작하여 면모를 일신하게 되었는데, 극락보전 역시 왕릉 원찰로 지정되면서 창건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존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것을 1800년(정조 24)에 다시 중창한 것이다.
극락보전은 비록 규모는 크지 않지만, 왕실의 원찰답게 부연(浮椽)을 달아 겹처마 지붕을 만들었고, 기둥 사이에도 공간포(空間包)를 올린 다포계(多包系) 구조의 화려한 건물이다. 공포(栱包)는 내4출목 외3출목 구성으로 집 규모에 비하여 과도할 정도이고, 쇠서[牛舌] 위에 연꽃봉오리들을 조각하는 등 화려한 모습이다.
긴 장대석을 3벌로 정연하게 쌓은 기단과 계단도 조선조 사찰건축에서는 보기 드문 고급의 기법들이다. 길게 뻗어 나온 지붕 네 귀퉁이의 추녀를 받치기 위해 가느다란 활주(活柱)를 시설하였다. 내부에는 목조의 아미타삼존상을 봉안하였는데, 본존의 높이는 1.5m, 협시보살상(脇侍菩薩像)은 2m이며, 1977년에 개금(改金)한 불상들이다.
후불탱화와 우측의 신중탱 · 감로탱은 모두 1900년 작이고, 좌측의 지장탱은 1908년에 제작된 작품이다. 법당 내부 천장은 우물천장이지만, 불단 상부에는 화려한 닫집을 짜아 내부의 장엄을 더했다. 극락보전 내부에는 건륭 38년(영조 49년, 1773년)의 명문이 새겨진 범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