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신복사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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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신복사지 삼층석탑 정측면과 석조보살좌상 좌측 후면
강릉 신복사지 삼층석탑 정측면과 석조보살좌상 좌측 후면
건축
유적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내곡동 일대에 있는 고려시대 신복사의 사찰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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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내곡동 일대에 있는 고려시대 신복사의 사찰터.
내용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범일로 664번길 22(내곡동 403-2번지) 일원의 나지막한 구릉 산기슭에 있는 고려시대 신복사의 절터이다. 조선시대에 간행된 관찬사서 및 불교 사찰 관련 문헌에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아 창건 역사 및 폐사 시기 등 그 내력을 살필 수 없다. 다만 강릉읍지인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1933)에 신라 문성왕 때 명주 사굴산문(闍堀山門)을 개창한 범일선사(梵日禪師, 810~889)가 굴산사와 함께 창건한 것으로 전해오고 있으나 명확하지는 않다.

신복사지는 오래전에 절 이름이 '심복사(尋福寺)' 또는 '신복사(神伏寺)'로 알려져 왔으나 일제강점기인 1936년과 1937년 '신복(神福)'이라는 두 글자가 새겨진 명문기와편이 발견되어 '신복사(神福寺)'로 부르게 되었다. 현재 절터에는 고려시대 전기의 뛰어난 석조미술품으로 평가되는 강릉 신복사지 석조보살좌상(보물, 1963년 지정)과 신복사지 삼층석탑(보물, 1963년 지정)이 남아 있다.

신복사지에 대한 고고학적 조사는 1989년 강릉시에서 국가지정 석조문화재 보존관리를 위한 주변 보호책 및 배수시설 설치를 위한 터파기 공사를 시행하던 중 건물지 유구 일부와 유물이 출토됨에 따라 1990년 강릉원주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부분적인 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조사결과, 석탑 및 석불좌상의 하부구조에 대한 기초적인 자료가 일부 조사되었고, 석탑의 남쪽 일대에서 정면 4칸, 측면 1칸 규모의 건물지 1기, 동쪽 일대에서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건물지 1기가 각각 확인되었다. 또한 동쪽 건물지 뒤편에서 길이 12m 정도의 배수로 유구가 확인되었다. 유물로는 고려시대 초기로 추정되는 연꽃무늬 · 도깨비눈무늬 수막새를 비롯해 당초무늬 · 초화무늬 암막새와 '神福寺'명문기와, 토기, 청자, 분청, 백자 등이 출토되었다.

이후 2002년 태풍 '루사'와 2003년 태풍 '매미' 등 잦은 수해로 인해 신복사지 유적지 내부로 많은 양의 토사가 유입되고 일부 지표가 유실되는 등 유적의 훼손이 진행됨에 따라 2005년 강릉시의 신복사지에 대한 종합적인 유적 정비사업 계획의 일환으로 유적의 분포범위와 성격 파악 등 학술자료를 수집하고 효율적인 보존대책을 수립하고자 강원문화재연구소에 의해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조사결과, 건물지 3기, 석축 1기, 구들시설 1기 등이 확인되었다. 출토유물로는 고려시대 기와류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도깨비얼굴무늬 · 도깨비눈무늬 · 연꽃무늬 · 초화무늬 · 당초무늬 등의 막새류와 사선무늬 · 어골무늬 · 수파무늬 등의 평기와류, '神福寺'명문기와, 청자 · 분청 · 백자 등의 도자기류 및 토기가 있다.

건물지1은 삼층석탑 남쪽 약 10m 지점에 위치하며, 신복사의 금당지로 추정된다. 앞뒤 퇴칸구조를 갖고 있는 정면 5칸, 측면 3칸의 구조로 전체 면적은 70.6㎡이다. 건물지 내부에 적심과 적심사이에 또 다른 초석이 확인되고 있어 최소 2번 이상의 증 · 개축이 이루어졌다. 건물지 남쪽으로 접하여 '冂' 형태로 둘러 싸고 있는 길이 15m 정도의 담장지와 길이 4.8m의 암거시설이 확인되었다.

건물지2는 삼층석탑 동쪽 약 15m 지점에 위치하며, 건물지1과 직각방향을 이루고 동회랑지로 추정된다. 뒤편 퇴칸구조를 갖고 있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구조로 전체 면적은 54.4㎡이다. 건물지 남쪽으로 인접하여 길이 7.5m 정도의 추정 담장지가 확인되었다.

건물지3은 삼층석탑 서쪽 약 8m 지점에 위치하며, 건물지1과 직각방향을 이루고 서회랑지로 추정된다. 정면 4칸, 측면 1칸의 구조로 잔존면적은 47.2㎡이다. 건물지 서쪽으로 인접하여 담장지와 배수로 추정되는 유구 일부가 확인되었다.

석축은 금당지로 추정되는 건물지1의 담장지 남쪽 2m 지점에 위치하며, 사역의 경계를 표시함과 동시에 남쪽 산지로부터 흘러 내려오는 토사유입을 막기 위해 자연석을 이용하여 2~3단 정도 높이로 길게 쌓았다. 현존 길이 약 33m이다.

구들시설은 삼층석탑 남동쪽 약 15m에 위치하며, 전체 길이 8.6m, 너비 3.4m의 규모로 아궁이와 3갈래의 고래시설, 배연부가 각각 확인되었으나 어떤 성격의 건물인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의의와 평가

강릉신복사지는 지금까지 두 차례의 발굴조사를 통해 삼층석탑을 중심으로 금당지와 동회랑지, 서회랑지가 배치된 고려시대 초기의 전형적인 1탑1금당 병렬식의 가람으로 확인되었다. 또한 신복사지는 9세기 무렵 범일의 창건설과 관련, 출토유물 양상으로 볼때 창건시기는 통일신라시대가 아닌 고려시대 초기 10세기 무렵으로 추정되며, 폐사시기는 나말여초까지 법맥을 이어오다 조선 중기 무렵에 완전히 폐사된 것으로 짐작된다. 그리고 이 절터에서 몇 점의 '神福寺'명문기와가 출토됨으로써 사찰명은 신복사로 정확히 밝혀지게 되었다.

따라서 강릉신복사지는 강릉굴산사지, 한송사지, 오대산 월정사 등과 더불어 오대산 불교문화권의 불교사상과 문화의 수용과 전개, 변천 과정에 대한 연구뿐 아니라 사굴산문의 전개양상과 위상을 파악하는데 매우 중요한 유적 중의 하나이다.

참고문헌

『강릉 신복사지』(지현병 외, 강원문화재연구소, 2007)
「신복사지 시굴조사 보고」(지현병·홍순욱, 『강릉 문화유적 발굴조사 보고서』, 강릉대학교 박물관, 1996)
「강릉시의 불교유적」(박경식, 『강릉의 역사와 문화유적』, 강릉대학교 박물관, 1995)
집필자
이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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