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金昌集) 등 노론(老論) 대신들의 정치 활동에 대한 기록을 시정하도록 한 일의 전말에 대한 기록이다. 1책. 필사본. 서(序)·발(跋) 등이 없고 편찬자도 알 수 없으나 정황으로 보아 19세기 전반 노론계 인사에 의해 편찬된 것으로 생각된다.
『문헌통고』 294권 13면에, 조선에서 1723년(경종 3) 연잉군(延礽君)을 세제로 삼았고, 이때 노론 4대신 김창집·이이명(李頤命)·이건명(李健命)·조태채(趙泰采) 등의 역모사실이 발각되어 복주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1820년(순조 20) 진향사(進香使)를 수행해 청나라에 갔던 영명위(永明尉)홍현주(洪顯周)가 책을 구입해 오면서 비로소 알려졌다.
이듬해 윤명렬(尹命烈)이 상소해 4대신을 옹호하면서 청나라에 변무사(辨誣使)를 파견할 것을 주장하였다. 당시의 집권 세력인 노론 대신들이 찬동해 진하사 겸 진주사(進賀使兼陳奏使)라는 직함으로 정사 이호민(李好敏), 부사 조종영(趙鍾永), 서장관 이원묵(李元默) 등에게 왕의 주문(奏文)을 가지고 가게 하였다. 주문은 왕이 병약했다는 사실과 4대신의 일은 종사를 위한 조처였음을 강조하였다. 이에 대해 청나라에서는 기록을 시정하겠다는 회자(回咨)를 보내왔다.
이 책은 『문헌통고』의 관계기록, 윤명렬의 상소 및 논의 과정, 변무사의 파견과 주문 및 예조 정문(呈文)의 내용, 청나라의 시정 약속, 사신들에 대한 포상, 종묘에의 고유제(告由祭 : 종묘에 제사지내는 까닭을 알리는 제사), 4대신들의 사판치제(祠版致祭 : 神主致祭)에 관한 사실 등을 수록하고 있다.
신임옥사 당시의 내용과 노론 집권자들의 태도 및 대청관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규장각도서에 있으며, 여강출판사(驪江出版社)에서 영인해 간행한 『조선당쟁관계자료집』 제9집에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