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이름은 이후(李珝). 선조의 넷째 아들로, 어머니는 인빈김씨(仁嬪金氏)이며, 한성부판윤 신립(申砬)의 사위이다.
인빈김씨가 선조의 총애를 받고 있으면서 신성군(信城君)을 낳았으므로 선조의 사랑을 독차지하였다.
1591년(선조 24) 서인 정철(鄭澈)이 먼저 경연(經筵)에서 광해군(光海君)을 세자로 세울 것을 건의하다가 동인 이산해(李山海) 등의 반대로 좌절되었다.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서 도성이 위급해지자 종묘와 사직의 위패를 모신 종묘관원을 따라 평양으로 피란했다가 5월 29일 일본군이 임진강을 건넜다는 보고를 받고 구사맹(具思孟)·신잡(申磼) 등의 호위를 받아 영변으로 향하였다.
이해 11월 의주에서 병사하였다. 1604년(선조 37) 호성공신(扈聖功臣) 2등에 책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