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자평(子平), 호는 관곡(寬谷). 신정미(申廷美)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신암(申黯)이고, 아버지는 대사성 신민일(申敏一)이며, 어머니는 윤종로(尹宗魯)의 딸이다.
1657년(효종 8)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678년(숙종 4)에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80년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이 되어, 사은 겸 진주사(謝恩兼陳奏使) 김수흥(金壽興)의 서장관(書狀官)으로 북경에 가서 인경왕후(仁敬王后)의 부음을 전하였다.
그 뒤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을 거쳐 경성부판관에 전임되었다가, 다시 장령으로 돌아와 외척의 전횡을 억제할 것을 상소하였다. 이 때 의정부에서 홍문관 예비관원 10인을 뽑을 때 선임되어 홍문록(洪文錄: 홍문관의 전적이나 수찬 등을 뽑기 위한 제1차 인사기록)에 올랐다.
뜻이 맞지 않으면 연장자에게도 공박을 멈추지 않아 한때 투옥된 일도 있었고, 1695년에는 대사간으로서 장희빈(張禧嬪)의 오빠 장희재(張希載)를 탄핵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