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아주(鵝洲). 자는 경해(景楷), 호는 이치재(二恥齋). 신채(申採)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신대석(申大錫)이고, 아버지는 신덕일(申德溢)이며, 어머니는 선성이씨(宣城李氏)로 이성구(李聖耉)의 딸이다.
1719년(숙종 45)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20년에 부정자, 1725년(영조 1)에 지평(持平)·정언(正言)·사옹원주부(司饔院主簿) 등에 임명되고, 1727년 병조좌랑·강원도사·병조정랑 등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부임하지 않다가, 거창부사가 되어 부임하였다.
1728년 이인좌(李麟佐)의 난 때, 이를 막지 못하여 군위에 정배되었다가 이듬해 석방되었다. 그 뒤 암행어사 이흡(李潝)이 전과를 재조사, 보고하는 과정에서 그 죄상을 과장하여, 1735년 다시 흥양(興陽)에 정배되었다가 7년 뒤 적소에서 죽었다. 1864년(고종 1) 복관되었다.
저서로는 『이치재집(二恥齋集)』이 있다.